내가 읽은 시

대학 시절 - 기형도

공산(功山) 2015. 11. 18. 21:50

   대학시절
   기형도(1960~1989)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했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던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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