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첫 목도리

공산(空山) 2018. 1. 20. 12:21

   첫 목도리

   신대철

 

 

   바람 부냐?

   아뇨.

   누가 왔다 갔냐?

   아뇨.

 

   머리맡 물그릇에 얼음 잡히는 밤, 아랫동네에는 객지로 나간 아이들 다 돌아온다고 살쾡이보고 오소리 너구리보고 혼잣말을 하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눈이 가매지도록 벽에 기대어 뜨개질만 하신다. 눈 맑히는 눈 왔다 가고 귀 트이는 눈 왔다 가고 조금씩 눈발이 굵어진다.

 

   품속에 숨긴 털목도리

   아시는 듯

   불빛 등진 채

   홑이불로 어깨 감싸고

   뜨개질 하시는 할머니

   천장에 기어드는 별빛 보고

   천지사방으로 돌아눕다

   납작한 몸

   벽에 붙이고 주무신다.

   내린 눈 쌓이지 않고

   소리 내며 날아다닌다.

 

   할머니 잠든 사이 눈 다시 내리고 나는 삼거리로 내려간다. 물푸레 숲속에서 주운 털목도리, 나무하러 갈 때 몰래 쓰고 품에 넣고 다닌 목도리, 사람 소리만 스쳐도 목줄기 지지는 목도리, 그 지글거리는 목도릴 나무 등걸에 얹어놓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찬 물소리 가슴으로 받으며 움막으로 올라온다. 검은 발자국에 흰 발자국 쌓인다.

 

   휘잉휘잉 눈보라 속에 눈기둥 돌아다니고

   흰 발자국에 검정 무늬 찍혀나오는 새벽

   나는 예와 아아뇨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바람 부냐?

   예.

   누가 왔다 갔냐?

   예.

   목도리 땜에 형제끼리 싸움질하던 그 도벌꾼이냐?

   예에.

 

   흩어진 피붙이들 허공에 이어붙이고

   내 품속의 목도리 얘기

   물푸레숲 물길 밑으로

   동네 소문 밑으로 가라앉히고

   할머니는 잠결에도 꿈속을 비우신다.

   처마에 시래기 쓸릴 때마다

   가슴으로 목줄기로 후욱 불길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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