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그분
신대철
7부 능선에서
개활지로 강가로 내려오던 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앞선 순서대로 이름 떠올리며
일렬로 숨죽이며 헤쳐가던 길
그분은 맨 끝에 매달려 왔다
질퍽거리는 갈대숲에서
몇번 수신호를 보내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 속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함께 가자 위협하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
손마디를 하나하나 맞추며
수고스럽지만 하다가
다시 만나겠지요 하던 그분
숨소리 짜릿짜릿하던 그 순간에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을까
그게 그분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까
창 흔들리다 어두워지고
천장에 달라붙은
천둥 번개 물러가지 않는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창비시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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