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삼천사에 가면

공산(空山) 2017. 9. 16. 22:02

   삼천사에  가면

                   ―홍섭에게

   전동균

 

 

   부처를 모신

   대웅전에 가지 않는다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석탑을 보지 않는다

   영험 많은 산신각 문고리도 잡지 않는다

 

   삼천사에 가면 나는

   슬픔을 품듯

   허공을 안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풍경 소리,

   經文처럼 마음에 새기며

   대웅전 지나

   산신각 지나

 

   그늘진 뒤안 요사채 맨 끝 방

   섬돌에 놓인

   흰 고무신을 보는 것이다

 

   누군가 벗어둔 지 오래된 듯

   빗물 고여 있고 먼지도 쌓여 있는

   그 고무신을 한참 보고 있으면

   뚝,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

   내 이마를 서늘하게 때리며 지나가고

   (, 아픈 한 생이 지나가고)

 

   가끔은

   담 밑 구멍을 들락거리는 산쥐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前生의 제 모습을

   기억한다는 듯

 

 

   ㅡ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세계사, 2002.

'전동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년  (0) 2017.09.23
먼 나무에게로  (0) 2017.09.16
땡볕 속  (0) 2017.09.16
댓잎들의 폭설  (0) 2017.09.16
배가 왔다  (0) 2017.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