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땡볕 속

공산(空山) 2017. 9. 16. 21:46

   땡볕 속

   전동균

 

 

   진관사에 갔는데, 계곡 물소리 들으러

   한여름 땡볕 속을 걸어갔는데

   이게 웬일이야?

   진관사 계곡에 물소리가 없는 거라

 

   돌들만, 마른 돌들만 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거라

   더러는 모가 나고 더러는 쩍쩍 금이 가고

   더러는 힘없이 쓰러진

   제 모습을 다 보여주고 있는 거라

 

   지난 봄 그토록 우렁차던 물소리들은

   어디로 떠나갔는지

   진관사 처마끝 풍경의 물고기들이

   薦度하듯 모두 데리고 갔는지

 

   타오르는 돌들의 숨막히는 울음소리가

   물소리처럼 굽이쳐 흐르는 거라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철철 쏟아지고 있는 거라

 

   마침내는 진관사도, 진관사 계곡도

   범람하는 돌들의 울음소리에 잠겨

   날으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목 쉰 저녁이 됐는데, 됐는데

 

   나는 아직 진관사에 가고 있는 중인 거라

 

 

   ㅡ「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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