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冬至 다음날

공산(空山) 2017. 9. 16. 21:22

   冬至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밥은 굶지 않는가?

   ――아이들은 잘 크는가?

 

 

   ㅡ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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