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주먹눈

공산(空山) 2017. 9. 10. 12:43

   주먹눈
   전동균


   눈 내리는 밤, 야근을 하고 들어온
   중년의 시인이
   불도 안 땐 구석방에 웅크리고 앉아
   시를 쓰는 밤, CT를 찍어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편두통에 시달리며
   그래도 첫마음은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 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야!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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