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균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

공산(空山) 2017. 9. 10. 22:52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

   전동균

 

 

   으슬으슬한

   저녁답,가랑잎 부서지는 소리가

   자꾸 발밑에서 들렸네

 

   어두워지기 전에 강물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아까보다는 훨씬 더 깊어져

   불빛도 안 켜진 사람의 마을 쪽으로

   그렁그렁 흘러갔네

 

   ―내 눈에는 왜 모래알이

   서걱이는지 몰라, 눈을 뜰 때마다

   눈 못 뜨게 매운 연기가

   어디서 차오르는지 몰라,

 

   잘못 살아왔다고, 너무

   아프게 자책하지 말라고

   갈 곳 없는 새들은

   물에 잠긴 옛집 나무 그림자를 흔들며

   석유곤로에 냄비밥을 안치는

   獨居의 마음속으로 떼지어 날아들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녁답, 나는

   집에 안 가려 떼를 쓰는

   새끼염소나 달래면서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세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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