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쪽은 그대가 의탁할 수 없는 곳/ 키가 천 길인 장인국 사람은/ 오직 사람의 혼만을 찾아 먹는다네/ 열 개의 태양이 번갈아 나와/ 무쇠는 녹아 흐르고 돌도 녹아 버리지/ 그들은 모두 몸에 익어 탈이 없지만/ 혼이 가면 반드시 없어져 버린다네/ 혼이여 돌아오라/ 그곳은 그대가 의탁할 곳이 못 되느니/ (...)사람들이 다 같이 진정을 풀어놓고/ 한마음으로 시를 읊조리네/ 마시고 또 마시고 끝없이 기뻐함은/ 선조와 옛 벗으로 유쾌해서라네/ 혼이여 돌아오라/ 어서 그대의 옛집으로 돌아오라
(2)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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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굴원의 초혼招魂의 부분이고 (2)는 김소월의 초혼의 부분이다. 굴원은 상상과 과장으로 묘사한 저승의 모습을 제시한 후에 그곳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니 혼이여 돌아오라거나, 거나한 잔칫집의 분위기를 거론하며 어서 옛집으로 돌아오라고 상대방을 나름의 논리로 설득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기조는 객관적이다. 반면에, ‘시는 강렬한 감정의 자연적 분출’이라는 워즈워스의 말에 충실히 따르기라도 하려는 듯 소월은 아무런 논리적인 구성도 없이 그저 사랑하던 사람에 대하여 가슴에 북받치는 감정을 반복과 영탄법으로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기조는 주정적이며 주관적이다. 여기서 굳이 고대 중국의 문학 이론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의 '풍골風骨'론에 따른다면 둘 다 골력보다는 풍력이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굴원과 소월의 시 사이엔 2,300년의 시차만큼이나 형식과 내용에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상당한 시적 성취를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물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대시의 지평에서 보자면 꽤나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김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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