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문학상 폐지론
맹문재
1.
2019년 4월 12일 최재봉 《한겨레》 신문기자는 지난달에 간행된 김혜순 시인의 새 시집 『날개 환상통』을 소개하면서 시인이 연루된 적 있는 5·18문학상 소동이 시집의 창작 동기라고 보았다. 그 근거로 “그들은 말했다/애도는 우리 것/너는 더러워서 안 돼”(「날개 환상통」 부분), “나와봐! 나와봐! 네 면상을 치고 말 테다/(…)/저들과 싸울 거야/저들을 벨 거야”(「바닥이 바닥이 아니야」), “나에게 우파에 좌파에 모더니스트에 친일파에 온갖 병을 뒤집어씌워도/나는 울지 않아 대신 내 콧물 가래나 받아”(「구속복」 부분) 등의 시들을 들었다.
5·18문학상 소동이란 2017년 5·18기념재단이 제정 및 운영한 5·18문학상에 선정된 김혜순 시인과 관계된 일이다. 문제가 된 것은 수상자는 물론 심사위원들이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혜순 시인은 2006년 미당문학상 수상자였고, 심사위원인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미당문학상 심사위원, 나희덕 시인은 미당문학상 수상자, 김형중 평론가는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의식이 있는 시인들이 김혜순 시인의 5·18문학상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고, 김 시인 또한 “5․18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본인의 시집 <피어라 돼지>를 선정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5․18 정신의 무거움을 생각할 때 정중히 사양한다고 5․18기념재단에 알”리면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김 시인은 자신의 문학상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던 시인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시인들의 목소리는 왜곡된 역사의식에 젖어 있는 한국 문단에 자성을 촉구한 일로 응원의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인데, 김 시인은 그들이 마치 폭력 집단이라도 되듯이 비난한 것이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에 대한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경상남도 진주시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는 2019년 4월 27일 제9회 이형기문학상 수상집으로 『날개 환상통』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은 정과리 문학평론가와 오형엽 문학평론가였다. 정과리는 한국에서 시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친일문학상인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이고, 오형엽 역시 친일문학상인 팔봉비평문학상의 심사위원이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보면 한국 문단에서 친일문학상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하고, 따라서 친일문학상 청산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알 수 있다.
2019년 6월 25일 한국의 언론들은 김혜순 시인의 ‘그리핀 시 문학상’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이 상은 캐나다의 그리핀 트러스트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시 문학상으로 2000년 캐나다의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시의 대중화와 시 문화를 알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전년도에 영어로 출간한 작품을 대상으로 매년 국내외 시인을 1명씩 선정해 시상한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출간한 시집 자체를 판단할 뿐 시인의 역사의식이나 정치적인 관계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핀 트러스트가 김혜순 시인의 미당문학상 수상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고,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적인 시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론들이 지나치게 보도하는 바람에 김혜순 시인의 친일문학상 수상 문제는 일시에 묻히고 말았다. 민족과 역사를 배반한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고도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우대받는 것이 한국 문단과 언론의 현주소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엄정하다. 시의 정부라고까지 칭해졌고 타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해 미당문학상까지 제정되어 시행되었지만 끝내 폐지되고 만 서정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2.
2019년 5월 11일 오후 2시부터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조선일보에서 시행하는 동인문학상과 한국일보에서 시행하는 팔봉비평문학상이 대상이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이기도 했다. 동인문학상에 대해서는 고인환, 하상일, 임성용의 발표와 서영인, 이동순, 손남훈의 토론이 있었고, 팔봉문학상에 대해서는 이명원의 발표와 최강민의 토론이 있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기조 강연에서 해방된 뒤 친일 청산을 이루지 못한 한국의 역사와 나치 협력자들을 엄격하게 처단한 유럽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친일문학상 폐지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점령군에 협력한 국민들 중 4만 5천명(인구 10만 명당 1,650명) 이상 처형한 것을 비롯해 네덜란드는 10만 명당 1,250명, 벨기에는 960명 이상 처벌했다.
특히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들을 엄정하게 처리해 최고재판소는 1960년까지 총 108건을 다루어 18명에게 사형을, 25명에게 징역형을, 14명에게 공권력 박탈형을 선고했다. 일반법원은 14만 건을 다루어 6,763명에게 사형을, 2,777명에게 종신 강제노동형을, 10,434명에게 유기 강제노동형을, 26,529명에게 유기 징역형을, 3,678명에게 공권력 박탈형을 선고했다. 지방법원은 12만 건을 다루어 4,783명에게 사형을, 50,000명에서 강제 노동 또는 징역형을 선고했다.또한 해당 문인은 작품 발표를 금지당했고 신문들도 폐간되었다.
고인환은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의 문학 세계와 해방 뒤의 행적을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의 문학이 친일 행적이라면 해방 뒤의 문학은 자신의 친일 행정을 합리화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김동인은 일본 총독부 정보과장을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친일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다. 해방된 뒤 「망국인기」(『백민』 1947), 「속 망국인기」(『백민』 1948) 등의 자전소설을 통해서는 자신은 정치와 무관하게 문학의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고, 민족 해방과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고육책으로 친일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쓴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역사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하상일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에서 친일 협력 문인인 김동인이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주장한 것은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 전략이었다고 보았다. 소설 「반역자」(『백민』 1946)를 통해 친일 문인의 중심에 있던 춘원의 행적을 비판한 것은 자신의 친일 행적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임성용은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감자」와 「붉은 산」을 중심으로」를 통해 김동인이 식민지 만주인과 조선인의 싸움을 부추긴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심화시켜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명원은 「기억과 책임의 분식- 팔봉비평문학상의 폐지 문제」를 통해 친일부역에 종사한 김팔봉은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기억’해야 될 인물이라고 보았다. 김팔봉의 친일 글쓰기와 행적이 문학사나 저널리즘에서 논의되지 않는 기형적인 상황은 김현 이래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들이 한국 문단의 권력자이자 상징적인 지위를 점한 면과 상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폐지를 위한 학술 세미나는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2016년 11월 29일 오후 2시부터 함춘회관에서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처음 열렸는데, 100여 명 이상의 문인과 학자가 참가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친일문학상 폐지 운동은 시민들을 상대로 한 온라인 서명 운동, 한국작가회의의 내부 토론회(2017년 3월 25일 서울유스호스텔 지하 1층 소회의실), 친일문학상 반대 행사(2017년 8월 15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으로도 전개되었다. 친일 문인들의 작품 전시,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 친일시 낭독, 시민 대상 친일문학상 폐지 서명 운동 등이 진행되었다. 2017년 12월 5일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미당문학상 시상식 항의 집회도 가졌다.
그 결과 2017년 7월 한국작가회의 이사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친일문학상 반대를 결의해 10월 21일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을 홈페이지와 전체 회원들에게 알렸다. 그 핵심 내용은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였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018년 10월 6일 13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학술 세미나를 가졌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기조 발제와 이명원의 「김동인의 대일협력과 동인문학상 문제」, 오창은의 「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 최강민의 「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 공선옥의 「상- 그 곤혹스런 추억」 등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고명철, 이성혁, 서영인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와 같이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운동은 지속되고 있고, 시인들의 작품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3.
제국들이 다투어 식민지로 점령하던 나라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차지하러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로, 독일은 아프리카로
영국과 프랑스는 인도로, 인도차이나 반도로
일본은 이에 질세라 조선으로 청으로
태평양 제도는 분할 점령으로 세력 확장에 열 올릴 때
명성황후를 시해하더니, 을사늑약을 강제하더니
헤이그로 밀사를 보내 국권 회복을 시도하던
고종황제마저 퇴위시키니
대한의 독립 주권이 깡그리 침탈당해
이천만 의병으로 봉기하는 길밖에 없을 때
분노와 의기 삼키며
북간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12인 단지동맹을 결성한 맹서가
마침내 하늘에 가닿았는지
어떤 날선 혁명보다 예리하게
적의 심장을 꿰뚫던 하얼빈역의 그가 아니면
누가 제국의 침탈에 의거할 수 있었겠는가!
서양 열강들의 식민 침략에 대항하여
동양 평화의 비책을 선포한 자가 있더냐!
그의 몸에 강신한 북두칠성이
대륙을 삼키려던 제국의 만행을 저지했네
침략의 원흉 이토를 총살로 응징하며 ‘코레아 후라!’
하얼빈역발 세 발의 총성이 대한 만세를 외쳤네
― 정원도, 「안중근」 전문
“어떤 날선 혁명보다 예리하게/적의 심장을 꿰뚫던 하얼빈역의 그가 아니면/누가 제국의 침탈에 의거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평가가 있듯이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인 의의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비록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1910년 8월 29일 이전이기는 했지만 안중근 의사는 한국과 일본이 전쟁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맞선 것이다. “명성황후를 시해하더니, 을사늑약을 강제하더니/헤이그로 밀사를 보내 국권 회복을 시도하던/고종황제마저 퇴위시키니”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침탈했다. 실제로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통감부가 한국에 설치됨으로써 내정이 장악되었다. 나아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및 한국 군대 해산 등으로 식민지 상황과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안중근 의사는 “12인 단지동맹을 결성한 맹서”를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밑동이 일제의 대검으로 찍히고 도끼로 패여도
보라, 독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거라며
조선 소나무는 독립 투쟁을 전개하듯
허공을 휘어잡으며
사철 당당하게 서 있노라
조선 소나무의 강직한 생명력이 피워내는
짙은 솔내음을 맡아보라
일본에 고개 숙이는 것이 싫어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세수를 했다는
단재 선생의 혼의 향기를 맡아 보아라
많은 곳에 쓰이는 솔잎처럼
성균관 시절 개화자강과 민족운동에 더 관심을 쏟고
을사조약 체결 후 낙향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쳐
나고 자란 땅을 내주지 않으려고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민족애로
만주와 시베리아를 돌아다니며 역사를 바로잡아
자부심과 희망을 우리 땅에 뿌리내린 단재 소나무여
곡선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도 잎이 뾰족하여
다가가면 잎에 찔리듯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 필봉을 휘두르며
모진 칼바람이 휘몰아쳐도
보라, 조선소나무는 흔들리고
쓰러지고도
꿋꿋하게 푸르름을 잃지 않노라
― 안명옥, 「신채호」 전문
“밑동이 일제의 대검으로 찍히고 도끼로 패여도/보라, 독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거라며/조선 소나무는 독립 투쟁을 전개”한 것이 단재의 모습이다. “성균관 시절 개화자강과 민족운동에 더 관심을 쏟고/을사조약 체결 후 낙향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쳐/나고 자란 땅을 내주지 않으려고/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민족애로/만주와 시베리아를 돌아다니며 역사를 바로잡아/자부심과 희망을 우리 땅에 뿌리내”렸다.
단재는 조선이 근대 국가를 이루려면 서양의 문명을 배워야 하기에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친일파 혹은 개량주의자들과 달리 투쟁만이 민족의 해방을 가져온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단재는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정의한 뒤 비밀 결사대인 동방청년단을 만들었고, 무력 항쟁을 강화하기 위해 군자금을 모았으며, 「조선혁명선언」 등을 비롯한 많은 논설과 글들을 통해 무력 항쟁을 역설했다. 일제에 의해 자행되는 통치, 경제 약탈, 사회 불평등, 노예적 문화사상 등을 민중 혁명으로 파괴하려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폭탄 제조소의 설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맹원(劉孟源)이란 가명을 쓰고 중국인으로 변장해서 대만에 상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2016년 12월 28일
나는 상해 지하철 홍구족구장역
노신공원에 있는 매헌 사당을 참배하였다
충청도 몰락한 양반가의 아들이었던 선생
3·1항일운동의 민족적 분노를 목격하고
식민지 노예 교육을 거부하며
야학을 개설한 선생님
농민독본을 저술한 농촌운동가
삼백여 편의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시인
“대장부가 큰 뜻을 품고 집을 떠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글을 남기고
만주로 상해로 망명길을 떠난
세탁소 노동자로 말총모자공장 노동자로
노동조합 조직가로
그리고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태극기를 배경으로
오른 손엔 권총 왼손엔 수류탄을 들고
맹세문을 양복 가슴에 붙인 채
“일찍이 서울의 달빛 아래 흠뻑 술에 취했는데
지금 상해의 가을 아래 울분에 젖어 슬픈 노래를 부른다”
시를 짓고
1932년 4월 29일
일본 전승축하 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의 군부와 관부인사들을 폭살시킨
침체에 빠졌던 대한민국과 중국의 항일투쟁에
활로를 열어주었던
동북아 평화의 화신
2018년 4월 28일
나는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평화 윤봉길 전국시낭송대회 심사를 하면서
학행이 일치했던 윤봉길 선생의 시
“선비의 기개 맑고 맑아 만고에 빛나리”라는 구절을
몇 번이나 되뇌어보았다
― 공광규, 「윤봉길」 전문
윤봉길 의사는 1930년 ““대장부가 큰 뜻을 품고 집을 떠나면/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글을 남기고/만주로 상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31년 박진이 경영하는 중국채품공사에 취직해 직공으로 일하며 한인공우친목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1932년 상해 홍구 일대에서 야채장사를 하다가 박진의 소개로 김구를 만나 4월 26일 한인애국단 단원이 되었다. 의열투쟁을 결의한 뒤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일본 전승축하 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여/일본의 군부와 관부인사들을 폭살시”킴으로써 “침체에 빠졌던 대한민국과 중국의 항일투쟁에/활로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4.
2019년 7월 4일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중에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종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들 소재를 일본에서 절대적으로 수입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라는 전쟁을 벌인 이유는 우선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1월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징용된 피해자에게 신일본제철이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보복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을 근거로 개인에 대한 배상을 거절해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수출 규제의 카드를 내밀 때 한국과의 신뢰관계, 수출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을 들었듯이, 다시 말해 한국에 수입된 반도체 관련 소재들이 북한으로 흘러가 군사 용도로 전용된다고 주장했듯이, 우경화되고 있는 아베 정권이 북한 카드로 우익의 입지를 넓히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한국인 개인이 일본의 불법행위에 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가능한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식민지 지배를 한 기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정치적인 문제를 경제적인 영역에 적용한 것이기에 자유무역의 원칙에 어긋난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따라서 단재 신채호나 안중근, 윤봉길 의사처럼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맞서는 의지가 필요하다. 물론 전쟁은 가능한 한 평화적으로 단시일에 종식시켜야 한다.
얼마 전 청와대가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를 비판했다는기사는 믿기지 않는다.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한 것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7월 5일 「외교를 도덕화하면 아무것도 해결 못해」 및 15일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중앙일보》는 「닥치고 반일이란 우민화 정책」 및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더욱이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라는 제목의 기사는 일본어판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일 한국 청와대」라는 제목으로 바꿔 기사화했다. 공교롭게도 두 신문은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을 시행해온 언론사라는 공통성이 있다.
이제 한국 문단은 친일문학상 청산 문제를 좀 더 역사적인 차원에서 인식하고 극복할 필요가 있다. 친일 문학상을 옹호하는 측은 해당 문인의 흠결보다 업적이 더 크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렇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문인들의 흠결이 결코 작지 않으므로 문학상의 제정은 인정될 수 없다. 문학상은 작가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 이상으로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욱이 친일 문인들은 민족 앞에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용서되지 않았다. 따라서 친일문학상을 반대하는 일은 과거의 역사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 모순을 극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드골 정부가 나치 협력자에 대해 처벌할 때 용서하고 화합하자는 관용론에 맞서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말한 알베르트 카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교수.
―《신생》 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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