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인론

김상환 시인 - 김지혜(hellowis)

공산(空山) 2020. 9. 23. 11:17

대구경북의 문인<26>김상환 시인

 

알고 느끼는 것의 한 방법으로
시 선택했죠

김상환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서, 공부가 좋아서 묵묵하게 시인의 길을 고집해 왔다. 최근에는 문학적 관심과 지향점을 현(玄)과 비(非), 공(空) 등의 비한정사에 두고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달 뜨지 않은 밤에/나는 심천 미루나무 숲속에/짐승처럼 쭈그리고 앉아/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타는 음성을/듣는다//원무(圓舞)를 그리며/우리를 에워싸고 있는/간증의 불꽃은 삼경을 지나/더욱 간절한 몸부림으로 떤다//나는 살을 쥐어 뜯으며/본향을 생각하다/꿈에만 출항하는 영혼의 뱃고동 소리에/시선이 멎다//어차피 모래알처럼 부서질//너와 나는/일어나 숲속을 헤매다,/깊이도 모를 바다의 숲속에/닻을 내린다

머무름과 떠남,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하는 젊은 날의 고뇌와 존재론적 고독을 주제로 김상환 시인이 쓴 시 ‘영혼의 닻’이다.

이 시는 1970년대 중반 대학 시절, 충북 영동의 심천 미루나무 숲에서 열린 한국대학생선교회 CCC 천막수련회의 체험과 성경 속의 한 구절에 대한 기억이 맞물리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이 시로 시인이 됐다.

◆시와 비평을 아우르다
어느 늦은 저녁 고향집 우물가에서 본 어머니의 알 수 없는 눈물과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
이는 존재론적 물음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됐고, 김상환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이자 출발점이 됐다.

데뷔작 ‘영혼의 닻’은 대학 졸업을 전후한 시기 갖게 된 예의 고민에서 비롯됐다.
당시 심사평을 맡았던 문덕수 시인은 ‘영혼의 닻’에는 ‘시에 대한 경건함과 내면의 응시’가 담겼다고 했다.

그는 25세 되던 해 시인이 됐다.
대학 졸업 후 고향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할 때였다.

“그때의 기쁨은 긴 서천 강둑을 자전거를 타고 혼자 누비던 바퀴살과 푸른 바람만이 알고 있다.”
차분한 성격에 읽고 쓰는 일은 취향과 적성에 맞았다.
독서와 창작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터라 문학을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본격적인 활동은 대학에서 청림문학동인(지도교수 이가림)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그가 생각하는 시는 무엇일까.
김 시인은 시를 앎과 느낌의 한 방법이자, 가교라고 말한다.
그것은 시와 비(非)의 고유한 영역 안에서만 가능한 물음이며 대답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그에게 시는 비(非, 悲, 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의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이다. 슬픔이라는 기쁨, 죽음이라는 생, 환(幻)이라는 각(覺)은 그 연장선에 놓인다. ‘모든 것은 모든 곳’이라는 말이 있다. 시는 비(非)라는 장소이며, 진정한 시공간은 비(非)와 묘처에 있다. 그것은 새로운 하나이고 일상의 비밀이자 발견이다. 그리고 생명의 생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과 ‘어떻게’ 이전에 ‘왜’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품 발표와 출간에 이렇다 할 관심과 욕망이 없었던 탓에 그의 시집은 1990년 도서출판 둥지에서 펴낸 ‘영혼의 닻’ 한 권이 전부다.

그는 과작의 이유로 게으른 성격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시를 쓰기보다는 시를 알고 이해하고 말하며, 비평적 글읽기와 글쓰기를 선호한 결과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다수(성)의 문학에 대한 일말의 거부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또 스스로 시의 위의를 곧추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최근에는 문학적 관심과 지향점을 현(玄)과 비(非), 공(空) 등의 비한정사에 두고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

시와 철학을 좋아한 나머지 그의 관심은 비평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비평적 담론에 관심이 많다.
이기철 교수가 주관한 ‘문화비평’지 10호(1993 여름)에 ‘한 내면주의자에 대한 비망록적 글쓰기-이가림론’을 쓰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 글은 나중에 프랑스어로 번역돼 한국랭보학회지에 수록되기도 했다.

‘현대시학’, ‘시와시학’,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비한정사에 관심을 두면서 현(玄)과 비(非)와 관련한 비평적 글쓰기도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문학 활동 즐기는 시인
매주 순례하다시피 서점을 찾는 등 늘 책을 가까이하는 모습은 무남독녀 외동딸에게도 강하게 비쳤다.

그의 딸 역시 현재 부산외대 대학원 박사과정 2년차로 미국소설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등 문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것.
“어릴적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이던 딸은 동시쓰기에 흥미를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동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가끔 딸과 문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는 시작 외에도 인문학 세미나 등 문학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동서 시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로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A.N.화이트헤드 세미나(과정 철학)가 대표적이다.

행역(行易) 사상, 한국 고전의 재해석, 하이데거와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존재론, 리쾨르의 은유 시학, 메를로 퐁티의 지각론 등이 그의 문학ㆍ철학적 관심사다.
매년 방학 때가 되면 서울에서 박성철 교수와 함께 한국고대사상에 대해 스터디를 한다.

7년 전부터는 수성도서관에서 매주 수요일 실시하는 시민 인문학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또 지역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빛소리독서회’에 참여하며 월 1회 독서토론 활동을 돕는가하면, 수성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상화문학제의 ‘상화유적답사’를 5년째 지도하고 있다.

그의 계획은 2019년 정년을 즈음해 어느 때보다도 구체적이고 계획적이다.

김상환 시인은 “단기적으로는 그동안 써 둔 글 가운데 묶어서 시집과 시론집(비평집)을 내고 중기적으로는 미학적 에세이집 간행, 장기적으로는 박사 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단행본(가제 한국근대시론사연구)을 펴낼 예정이다”고 말했다.

정년 이후에는 발간한 책으로 강의와 연구를 병진할 계획이다.
비와 현의 사유 이미지를 위주로 한 연작시도 구상 중이다.

“환력을 지나는 동안 나는 앎이나 삶에 있어 누구도 없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저 시가 좋아서, 공부가 좋아서 묵묵하게 예의 그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지금까지 나만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결산하며 정리할 생각이다.”

 

글ㆍ사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김상환 시인 약력>
-1957년 경북 영주 출생
-숭전대(한남대) 영문과 졸업. 영남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81년 8월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시「영혼의 닻」외 4편으로 등단
-시집 ‘영혼의 닻’ 및 번역(공역) 시집 ‘칸초니에레’ 출간
-‘문화비평’, ‘현대시학’, ‘시와시학’,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대구문학’ 등에 평론 다수 발표
-수성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
-강의 자료집 ‘앎과 삶’ 공저 발간.
-대구교대, 영남대, 경일대 강사 역임
-현 한국과정사상연구소 연구원, 소선여자중학교 교사

 

[출처] 대구경북의 문인<26>김상환 시인|작성자 hellow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