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아폴리네르

나그네

공산(空山) 2017. 7. 16. 07:57

나그네

기욤 아폴리네르



울며 두드리는 이 문을 열어 주오


인생은 에우리포스만큼이나 잘도 변하는 것


그대는 바라보았지 외로운 여객선과 함께

미래의 열기를 향해 내려가는 구름장을

그리고 이 모든 아쉬움 이 모든 회한을 그대 기억하는가


바다 물결 활처럼 구부러진 물고기들 해상의 꽃들

어느 날 밤바다였지

강물이 그리 흘러들고 있었지


나는 그걸 기억한다네 아직도 기억한다네


어느 날 저녁 나는 스산한 여인숙으로 내려갔다네

뤽상부르 근처

홀 안쪽에 그리스도 하나가 날고 있었지

누구는 족제비 한 마리를

또 누구는 고슴도치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지

카드 노름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대는 그대는 나를 잊어버리고 있었네


정거장과 정거장 그 긴 고아원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지나갔지 하루 종일 빙빙 돌다가

밤마다 그날의 태양을 게워 내는 도시들을

오 뱃사람들이여 오 어두운 여자들과 여보게나 내 친구들이여

그걸 기억해 주게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던 두 뱃사람

한 번도 말을 나누지 않았던 두 뱃사람

젊은 뱃사람은 죽어 가며 옆으로 넘어졌다


오 여보게나 다정한 친구들이여

정거장의 전기 벨 수확하는 여자들의 노래

푸주한의 썰매 일개 연대나 되는 헤아릴 수 없는 길들

일개 기병대나 되는 다리 알코올의 창백한 밤들

내가 보았던 도시는 미친 여자들처럼 살고 있었다네


그대는 기억하는가 교외와 탄식하는 풍경의 무리를


사이프러스나무들이 달빛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

여름이 저물어 가던 그날 밤

생기 없고 항상 진정하지 못하는 한 마리 새와

드넓고 어두운 강의 영원한 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였지


그러나 그때 모든 시선이 모든 눈의 모든 시선이

죽어 가며 하구를 향해 굴러갔지

강변은 인적 없고 풀이 무성하고 적막한데

강 건너 산은 몹시도 밝았지


그때 소리도 없고 살아 있는 것 하나 보이지도 않는데

산을 끼고 생생한 그림자들이 지나갔지

옆얼굴만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어렴풋한 얼굴 돌리며

그들의 미늘창 그림자를 앞으로 치켜들고


그림자들은 수직의 산을 끼고

커지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몸을 구부리기도 하며

그 수염 난 그림자들이 인정스레 울고 있었지

밝은 산비탈로 한 발짝 한 발짝 미끄러져 들어가며


이들 낡은 사진에서 도대체 너는 누굴 알아보았느냐

한 마리 벌이 불 속에 떨어지던 날을 너는 기억하느냐

너는 기억한다 그것은 여름의 끝이었다

한 번도 헤어지지 않았던 두 뱃사람

나이 든 뱃사람은 목에 쇠사슬을 걸고 있었다

젊은 뱃사람은 금발을 땋아 내리고 있었다


울면서 두드리는 이 문을 열어 주오


인생은 에우리포스만큼이나 잘도 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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