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아폴리네르

행렬 - 기욤 아폴리네르

공산(空山) 2017. 7. 15. 23:39

   행렬

   기욤 아폴리네르

                                    레옹 바이비 씨에게

 

   조용한 새 뒤집혀 나는 새야

   허공에 깃을 트는 새야

   우리의 땅이 벌써 빛을 내는 그 경계에서

   네 두 번째 눈까풀을 내리감아라 네가 고개 들면

   너는 지구가 눈에 부시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가까이에서 나는 어둡고 흐리다

   방금 등불을 가린 안개 한 자락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손 하나

   너희들과 모든 빛 사이에 둥근 지붕 하나

   그리하여 어둠과 줄지어 선 눈들 한가운데서

   사랑스런 별들로부터 나는 멀어지며 빛나리라

 

   조용한 새 뒤집혀 나는 새야

   허공에 깃을 트는 새야

   내 기억이 벌써 빛을 내는 그 경계에서

   네 두 번째 눈까풀을 내리감아라

   태양 때문이 아니라 지구 때문이 아니라

   마침내 어느 날 단 하나의 빛이 될 때까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열해질 이 길쭉한 불 때문에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을 기다렸다

   나는 내게 말했다 기욤 이제 네가 올 시간이다

   마침내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알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아는 나를

   나는 오관과 또 다른 것으로 저들을 안다

   나는 저들 수천 사람을 재현하려면 저들의 발만 보면 그만이다

   저들의 허둥대는 발 저들의 머리칼 한 오라기

   아니 의사인 체하고 싶으면 저들의 혀

   아니 예언자인 체하고 싶으면 저들의 아이들

   선주들의 배 내 동업자들의 펜

   장님들의 지폐 벙어리들의 손

   아니 심지어 필체 때문이 아니라 어휘 때문에

   스무 살 넘은 사람들이 쓴 편지만 보면

   냄새만 맡으면 그만이다 저들 교회의 냄새

   저들의 도시를 흐르는 강의 냄새

   저들의 공원에 핀 꽃의 냄새

   오 코르네유 아그리파여 작은 개 한 마리의 냄새만 맡으면

   그대의 쾰른 시민들과 동방박사들까지

   모든 여자들에 관한 오해를 그대에게 불어넣어 준

   우르술라의 수녀들까지 나는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사랑해야 할지 조롱해야 할지 그들이 가꾸는 월계수의 맛만 보면 된다

   그리고 옷만 만져 보고도

   추위를 타는지 아닌지 나는 더 묻지 않는다

   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여

   저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 나는

   저들이 접어든 방향을 언제라도 지적할 수 있다

   그것들 어느 하나만 있으면

   나는 다른 사람들을 되살려 낼 권리가 내게 있다고 믿기에 충분하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을 기다렸다

   나는 내게 말했다 기욤 네가 올 시간이다

   그러자 흥겨운 발걸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아갔다

   그 속에 나는 없었다

   해초에 덮인 거인들이

   탑들만이 섬인 그들 해저의 도시를 지나가고

   이 바다는 그 심연의 광채와 함께

   내 혈관에 피 되어 흘러 지금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뒤따라 땅 위에 수천 백인 미개부족들이 나타났는데

   저마다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중에서 발명한 언어를

   그들의 입이 전하는 대로 나는 배웠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행렬이 지나가고 나는 거기서 내 육체를 찾아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나 자신이 아닌 이 사람들이

   하나하나 나 자신의 조각들을 가져왔다

   탑 하나를 세우듯 조금씩 조금씩 나를 쌓아 올렸다

   민족들이 쌓이고 나 자신이 나타났다

   모든 인간의 육체와 모든 인간사가 형성한 나

 

   지나간 시간들이여 운명한 자들이여 나를 형성한 신들이여

   그대들이 지나갔던 것처럼 나는 지나가며 살 뿐이다

   저 빈 미래로부터 눈을 돌려

   나는 내 안에서 저 과거 전체가 커 가는 것을 본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빛나는 과거 곁에서 내일은 색깔이 없다

   그것은 노력과 효과를 동시에 완성하고

   나타내는 것 곁에서 형체마저 없다

'기욤 아폴리네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리  (0) 2017.07.16
나그네  (0) 2017.07.16
아니(ANNIE) - 기욤 아폴리네르  (0) 2017.07.15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0) 2017.07.15
변두리 - 기욤 아폴리네르  (0) 2017.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