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나귀가 좋아
물풀레 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내 소녀야, 너는 뭘 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리란 놈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 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란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그는 물푸레나무 울타리를 끼고 가는
아주 순한 당나귀란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할 테지.
그러니 말해 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 걸까, 웃고 있는 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 보고
이렇게 전해 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간다고.
당나귀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 속을
착한 마음 한아름 가득 안고서
꽃 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