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귀뚜라미 - 나희덕

공산(空山) 2016. 2. 10. 15:07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打電)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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