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打電)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0) | 2016.02.10 |
---|---|
일곱살 때의 독서 - 나희덕 (0) | 2016.02.10 |
파밭 가에서 - 김수영 (0) | 2016.02.10 |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0) | 2016.02.10 |
먼지 칸타타 - 황동규 (0) | 2016.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