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칸타타
황동규
세월이 가면 모든 게 먼지 탄다고 생각했으나
책도 가구도 벽에 기대는 표구한 사진도
먼지 탄다고 생각했으나
지난 25년 간 뒹군 연구실 비우려 보름 동안
벽 가득 메운, 겹으로 메운, 때로는 세 겹으로 쌓은
책들을 버리고 털고 묶으며
시시때때로 화장실에 가 물 틀어 놓고
먼지 진득한 두 손 비비다 보면
먼지는 과거 어느 한편이 아니라
전방위, 그래 미래로부터도 오는 것 같다.
하긴 몇 년 후에 온다는 혜성의 꼬리에도 먼지가 있고
앞날 먼지 켜켜이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먼지와 반복을 나르며
3층 화장실 창밖으로 훔쳐본 여름 하늘,
어느 틈에 검은 구름 하늘을 덮고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빗줄기에
플라타너스 잎들 제정신이 아니다.
일순, 캄캄한 하늘에 칼집을 내며 번개가 치고
화장실 거울에 띄운다 먼지로 빚은 테라코타 하나,
그가 방긋 웃는다.
우르릉!
속이 보이게 빚다 만 인간 하나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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