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파밭 가에서 - 김수영

공산(空山) 2016. 2. 10. 15:06

   파밭 가에서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石鏡)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朝露)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곱살 때의 독서 - 나희덕  (0) 2016.02.10
귀뚜라미 - 나희덕  (0) 2016.02.10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0) 2016.02.10
먼지 칸타타 - 황동규  (0) 2016.02.10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0) 201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