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공산(空山) 2016. 2. 10. 15:37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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