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나를 만나거든

공산(空山) 2016. 2. 4. 21:01

   나를 만나거든

   이용악

 

 

   땀 마른 얼굴에

   소금이 싸락싸락 돋힌 나를

   공사장 가까운 숲속에서 만나거든

   내 손을 쥐지 말라

   만약 내 손을 쥐더라도

   옛처럼 네 손처럼 부드럽지 못한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주름 잡힌 이마에

   석고처럼 창백한 불만이 그윽한 나를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고

   꿈 같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한마디도

   나의 침묵에 침입하지 말아다오

 

   폐인인 양 시들어져

   턱을 고이고 앉은 나를

   어둑한 폐가(廢家)의 회랑에서 만나거든

   울지 말라

   웃지도 말라

   너는 평범한 표정을 힘써 지켜야겠고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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