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미지의 여인 - 알렉산드르 블록

공산(空山) 2016. 2. 3. 23:27

   미지의 여인 

   알렉산드르 블록

 

 

   저녁마다 술집들 위로 떠도는

   뜨거운 공기가 거칠고 답답하다

   술꾼들의 들뜬 고함소리에는

   봄날의 썩는 냄새가 속속들이 베어있다.

 

   저 멀리 뒷골목의 먼지 위로,

   교외 별장들의 권태 위로는

   빵집 간판이 금빛 살짝 빛나고

   아이의 울음이 흩어진다.

 

   그리고 저녁마다 철길 건널목 너머에는

   모자를 삐뚜름히 멋을 부린

   노련한 재담가들이 숙녀들을 동반하고

   운하들 사이를 산책한다.

 

   호수 위에서는 노가 삐걱이고

   여인의 기성이 울린다

   하늘에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린

   원반이 무표정하게 휘음하다.

 

   저녁마다 유일한 친구는

   내 술잔에 어려 있다.

   그 또한 나처럼 쓰고 독하고 신비한 액체로

   마취되어 말없이 창백하다.

 

   옆자리 테이블들에서는

   졸음에 겨운 웨이터들이 대기하고

   술꾼들은 붉은 토끼눈으로 소리친다

   "술 속에 진리가 있다."

 

   또 저녁마다 그 시간이 되면

   (혹 내가 꿈을 꿀뿐이 아닌가?)

   비단옷으로 몸을 드러낸 여인의 자태가

   안개 서린 유리창에 비친다.

 

   그녀는 천천히 술취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와

   언제나처럼 동반자 없이 홀로

   향수와 안개를 내쉬며

   창가에 앉는다.

 

   그녀의 매끄러운 검은 실크드레스,

   조상(弔喪)의 검은 깃털들을 단 모자,

   그리고 반지를 낀 가느다란 손

   모두 전설의 향기를 풍긴다.

 

   이상한 친근감에 사로잡혀 나는

   검은 베일 뒤를 바라본다

   그곳에 그 매혹의 기슭,

   매혹의 먼 나라를 본다.

 

   아득한 비밀이 내게 주어졌다.

   누군가의 태양이 나에게 맡겨졌다

   독한 술이 찌르르 내 영혼 굽이굽이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손짓하는 타조 깃털들이

   내 뇌리 속에서 푸득거리고

   바닥 모를 푸른 두 눈동자가

   먼 기슭에서 꽃피고 있다.

 

   내 영혼 속에 보물이 들어있고

   열쇠는 내게만 주어졌구나!

   네 말이 맞구나. 술취한 괴물아!

   이제 나는 안다: 술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1906)

 

 

 

   @알렉산드르 블록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лок(1880~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