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백학 (白鶴) - 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공산(空山) 2016. 2. 3. 17:07

   백학 (白鶴)

   라술 감자토비치 감자토프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잠시 고향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그들은 그 옛적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그리고 우리를 불렀어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는 건 아닐까?

 

   오늘 석양이 저물어 갈 무렵

   안개 속의 학들이

   마치 땅 위의 사람들이 다리를 끌며 가듯,

   대오를 지어 날아가고 있구나

 

   날아가네, 기나긴 여정을

   꺼이꺼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혹 그래서 우리 아바르말이 개벽 이래

   학의 소리와 닮은 것이 아닐까?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에 지친 학의 무리

   내 지난 친구들과 혈육들이

   무리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새,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런지!

 

   그날이 오면 학들과 더불어

   나는 회정색의 그 어스름 속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 둔 그대들 모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부르면서

 

   --------------------------

 

   학()

   감자토프(Rasul Gamzatov, 1923~2003)

 

 

   가끔 생각하네

   전선에 쓰러져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은 눈처럼 흰 학이 된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전부터 그 계절이면

   학들이 높이 울며 날아갔던 듯싶어

   우리도 먼 울음소리에 눈물 글썽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던 듯싶어

 

   날아가네 저 하늘 학의 무리들

   멀어져 더는 보이지 않네

   이승의 삶 마치는 날

   나도 그 속의 한 마리 학이 되리

 

   아픔도 근심도 다 벗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겠네

   무리에 나도 섞여, 새로 배운 말로

   옛 친구들의 이름 하나씩 불러보겠네

   지상에 남은 그대들의 이름도 불러보겠네

 

   나는 가끔 생각하네

   전선에 쓰러져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눈처럼 흰 학이 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