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궂은 날

공산(空山) 2015. 12. 25. 12:47

   궂은 날

   김종삼

 

 

   입원하고 있었읍니다

   육신의 고통 견디어 낼 수가 없었읍니다

   어제도 죽은 이가 있고

   오늘은 딴 병실로 옮겨간 네 살짜리가

   위태롭다 합니다

   곧 연인과 死刑 간곡하였고

   살아 있다는 하나님과

   간혹

   이야기-ㄹ 나누며 걸어가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한 손을

   잡아 주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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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삼 시에는 많은 죽음의 모티프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생의 종점에 가까울수록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는 198412월 간경화로 타계하기까지 여러 번 병원을 드나들며 병마에 시달렸다. 그래서 죽음에 가까워진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죽음과 관련된 시를 여러 편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김종삼은 죽음에 대하여 초탈한 모습을 보이지만, 위의 궂은 날에서는 사정이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1연에서는 병고와 함께 죽음의 근접에서 오는 약간의 불안의식이 감지된다. 그리고 제2연에서는 연인에 대한 간곡한 사랑의 미련도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느낄 때 우리는 절대자에게 다가서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김종삼 시의 서정적 자아도 간혹 시궁창에 산다 해도/ 의 은혜이다.(非詩)’ 또는 옛 벗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음도/ 의 은총이다.(오늘)’ 등의 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궂은 날의 서정적 자아는 신에게 매달리고 싶지만 하나님은 저의 한 손을/ 잡아 주지 않았읍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드러낸다. 그것은 기독교 가정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최후의 탈가정적인 모습이며 끝까지 죽음에 대하여 초탈하고자 하는 주체적 셀프 아키타입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계를 지닌 나약한 인간으로 태어나 불행한 디아스포라(diaspora)로서 평생을 살다간 김종삼의 안쓰러운 성자(聖者)’의 모습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 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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