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크로프트는 런던을 떠나면서 작가로서의 삶에 작별을 고했다. 그는 내게 앞으로는 출판을 위한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그가 남긴 문서들을 살펴보다가 그 속에서 원고 뭉치 세 개를 발견했다. 언뜻 보기에는 일기 같았는데, 그중 한 원고의 첫 장에 쓰인 날짜는 그가 데번에 자리 잡은 직후부터 그 글을 쓰기 시작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글들을 조금 읽어보자 그것들이 단순한 일상의 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숙달된 문인은 글쓰기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음을 깨달았는지, 단상이나 회상, 몽상의 단편(斷片), 자신의 심경에 대한 묘사 등을 기분 내키는 대로 써나갔다. 그리고 페이지마다 그 글을 쓴 달을 적어두었다. 종종 그와 함께 있던 방에 앉아서 원고를 한 장씩 넘기자니 때때로 다시금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가 몹시 지쳐 보이는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짓거나 웃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익숙한 그의 자세나 몸짓도 떠올랐다. 하지만 이 기록된 이야기 속에서 그는 지난날 우리가 나눈 대화에서보다 더 내밀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라이크로프트의 과묵함으로 인한 결핍이 허물로 비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생을 많이 한 예민한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이, 그는 대체로 남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나 논쟁을 피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글들 속에서 그는 내게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었고, 원고를 다 읽고 나자 나는 예전보다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글들은 분명 일반 대중을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 구절에서 문학적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의 글 속에는 기발한 표현이나 어투 이상의 그 무엇, 오랜 창작 습관에서 비롯되는 어떤 것이 담겨 있었다. 특별히 그의 회고담 중 일부는, 그가 그것들을 어떻게든 활용할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적어두지 않았을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행복한 여가를 즐기는 동안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이번에는 오로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책을 말이다. 그것은 분명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단편적인 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시도는 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마도 어떤 형식을 택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인칭으로 서술된 책을 펴낸다는 생각에 망설였을 수도 있다. 그러는 것이 그에게는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여겨져서, 지혜가 좀 더 무르익기를 기다리자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펜을 내려놓았던 개 아닐까./(...)
인간의 정신으로 빚어진 작품을 시험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심판에 그것을 맡기는 것이다. 당신이 위대한 책을 썼다면 후세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사후의 영광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당신이 바라는 것은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 현재의 명성을 즐기는 것뿐이다. 아, 그렇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당신의 욕망을 용기 있게 펼쳐나가 보도록. 자신이 장사꾼임을 인정하고, 당신이 내놓은 상품이 비싸게 팔리는 많은 것들보다 나은 것임을 입증하며 신과 인간에게 항의해보라. 어쩌면 당신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유행의 바람이 당신의 진열대를 향해 불지 않는 것이 진정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식물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식물을 채집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아왔다. 나는 모르는 식물을 발견하고 내가 가진 도감에서 그것을 확인한 다음, 다음번 산책 때 길가에서 환히 빛나는 그 식물의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하는 것을 즐긴다. 만약 그 식물이 희귀한 것이라면 그것의 발견은 나의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위대한 예술가인 자연은 평범한 꽃들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만들어놓는다. 그것이 지극히 보잘것없는 잡초라 할지라도, 어떤 인간의 언어도 그 경이로움과 사랑스러움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이런 꽃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 아래 피어난다. 하지만 희귀한 꽃은 따로 은밀한 곳에서, 예술가의 한층 더 섬세한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꽃을 발견하게 되면, 마치 더욱더 신성한 성소에 받아들여지는 특권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기쁜 가운데에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오늘은 멀리까지 산책을 했다. 그리고 산책로 끝에서 조그만 하얀 꽃이 핀 선갈퀴를 발견했다. 어린 물푸레나무 숲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그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나는 그것을 둘러싼 날렵한 나무들의 우아함, 그 빛나는 매끄러움과 올리브빛 색조에 매료되었다. 바로 옆에는 느릅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어떤 미지의 언어에 속한 문자가 새겨진 것 같은 나무껍질은 마치 버짐이 핀 것처럼 보였는데, 그 때문에 어린 물푸레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봄을 보는 것이 내게 허락될까? 낙관적인 이들은 여남은 번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겸허하게 대여섯 번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려 한다. 사실 그것도 많다. 기쁨으로 맞이하는 대여섯 번의 봄. 첫 애기똥풀이 핀 후 장미가 봉오리를 맺을 때까지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대여섯 번의 봄. 누가 그런 것을 인색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지가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기적과, 지금까지 그 어떤 언어도 제대로 형용할 수 없었던 화려하고 사랑스러운 광경이 내 눈앞에 대여섯 번이나 펼쳐질 터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건 아닌지 두려워지기도 한다.(전문)
"인간은 자신의 불행을 곱씹는 데 골몰하며 불평하는 동물이다(Homo animal querulumn cupide suis incumbens miseriis)." 이 말이 어디에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언젠가 샤롱의 책 속에서 출전을 밝히지 않고 인용된 것을 발견했고, 그 이후 내 머릿속에 종종 떠오르는 이 말은 하나의 음울한 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오랫동안 진실로 남아 있었다. 자기 연민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없다면 삶은 아주 자주 견디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수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을 자살로부터 구하는 것은 자기 연민임에 틀림없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서 커더란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아무리 해봤자 조용히 성찰할 때처럼 삶의 비참함을 깊이 위로받지는 못한다.
다행히도 내게는 자기 연민의 습관이 결코 과거 지향적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장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결코 지배적인 악습이 될 만큼 뿌리 깊은 습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자기 연민의 습관에 굴복할 때마다 나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했고, 그것으로 인해 위안을 받을 때면 나 자신을 경멸했다. 심지어 "자신의 불행을 곱씹고" 있을 때조차도 조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우리를 지배하는 미지의 힘 덕분에 내 과거는 그 죽은 자를 묻어버렸다. 더 나아가, 내가 겪었던 모든 시련의 필요성을 차분하게 기꺼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내 삶은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노라고 말이다. 나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렇게 살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그러나 영원한 만물의 연속성 가운데서 이것이 내 자리였던 것은 분명하다./(...)
(...) 젊은 시절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런던에는 '라틴 구역(pays latin)'이 없지만, 배고픈 문학의 초심자들은 대체로 자신과 잘 맞는 동료들―대부분 토트넘코트로 지역이나 고질적인 첼시에 위치한 다락방에 사는 이들이다―과 어울린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보잘것없는 '보헤미안의 삶'을 살며, 그런 삶에 대한 의식적인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내 위치로 말하자면, 난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특이점을 갖고 있다. 나는 가벼운 관계를 맺는 것을 꺼려했고, 그 암울한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딱 한 명의 친구를 사귀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출세를 위해 청탁을 하는 것은 내 본성에 절대적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힘만으로 이룬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호의를 무시한 것처럼 남의 충고도 경멸했다. 내 머리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낯선 이들에게 빵 살 돈을 구걸해야 할 만큼 곤경에 처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것은 내겐 가장 쓰라린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렇더라도 친구나 동료에게 빚을 지는 것보다는 구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인 즉, 나는 나 자신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여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내게는 언제나 나 자신과 세계라는 두 실체만이 존재했고, 그 두 실체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는 늘 적대적이었다. 나는 사회적 질서의 일부가 되지 못한 채 여전히 외로운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때 이런 삶의 방식을 도도하게 자랑스러워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만약 내게 새로운 삶이 주어진다면, 재앙이었다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또다시 그런 식의 삶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6년이 넘도록 포장된 길만 지나다녔을 뿐 어머니 같은 대지를 밟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공원이 있긴 했지만, 그건 풀을 자라게 해서 위장한 포장된 땅일 뿐이었다. 그리고 최악의 시절이 지나갔다. 내가 지금 최악이라고 했나? 아니, 그렇지 않다. 최악의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젊고 활기가 넘칠 때는 굶주림과의 싸움에도 즐거운 면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반년 치의 음식과 의복을 보장받은 적도 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수년간 그런대로 충분할 수입을 벌어들일 기대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수입은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독자적으로 벌어들이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고용주에게 굽실거리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문필업의 영예로운 점은 그것이 누리는 자유와 그것이 지닌 존엄성에 있지 않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물론 내가 섬기는 것은 하나의 주인이 아니라 다수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독자적이라니! 내 글이 편집자와 출판업자 그리고 대중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어디에서 밥벌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내 글이 성공을 거둘수록, 내가 섬겨야 할 고용주의 수도 그만큼 더 늘어갔다. 나는 다수의 노예였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막연한 대중을 대표하는 어떤 이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그들이 나로 인해 돈을 벌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들은 내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하지만 이렇게 확보한 지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믿을 만한 어떤 근거가 내게 있었던가? 노역으로 먹고사는 사람치고 나처럼 불안정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또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몸이 떨려온다. 마치 무심코 깊은 구렁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처럼 몸이 떨려오는 것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근 20년 동안 이 펜과 원고지가 나와 내 가족을 입히고 먹여주었고, 내 육신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가진 거라고는 자신의 온른손밖에 없는 사람을 세상에 진을 치고 있는 적대 세력들로부터 지켜준 것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 (...)
(...) 젊은 시절에 나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째서 인류가 이만큼밖에 발전하지 못했는지 의아해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무리 속에 섞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류가 이토록 많이 발전한 것에 놀라워한다.
어리석게도 오만했던 나는 한 사람의 가치를 지적 능력과 성취로 판단하곤 했다. 논리적이지 않으면 선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고, 학식을 갖추지 못하면 매력을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부류의 지성, 즉 머리와 가슴에서 비롯되는 지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젠 후자를 훨씬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머리에서 비롯되는 지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루할 뿐 아니라 곧잘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우매함에 빠져들지 않은 것은 분명 머리가 아닌 가슴 덕분이었다. 그들과 마주하게 되면, 나는 그들이 대단히 무지하고, 편견이 심하며, 터무니없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최고의 미덕과 친절, 상냥함, 겸손함 그리고 관대함으로 빛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활용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가슴에서 비롯되는 지성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우리 집에서 나를 위해 수고하는 이 가난한 여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처음부터 나는 그녀가 보기 드물게 훌륭한 가정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알고 지낸 지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녀야말로 '탁월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그녀가 받은 교육의 전부다. 확신하건데, 더 이상의 교육은 그녀에게 해가 되었을 것이다. 교육은 그녀의 정신을 이끄는 명료한 빛을 제공하기보다는 그녀의 천성적 동기(動機)에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만족에서 오는 우아함과 경쾌한 성실함으로 타고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점이 문명인들 사이에서 그녀를 단연 돋보이게 한다. 그녀는 질서와 평온 속에서 기쁨을 느낀다. 인간의 자녀에게 보내는 찬사 중에 이보다 더 큰 게 있을까?
일전에 그녀가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열두 살에 남의집살이를 시작했는데, 그 조건이 참으로 기발한 것이었다. 정직한 노동자였던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가 하고자 하는 일을 가르치는 대가로 집주인에게 일주일에 1실링씩을 '지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어떤 노동자에게라도 그렇게 하도록 요구한다면, 아마도 그는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집 가정부가 보통 가정부들과 비교해 특출한 것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이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릴 것이다. 아무 때나 습득했던 모든 지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를 박식한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걱정거리나 동요, 두려움만큼 기억력에 매우 나쁘게 작용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읽는 것의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즐겁게 읽을 것이다. 나는 미래의 삶을 위해 지식을 축적하려는 것일까? 잊는다는 것은 더는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뿐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 학창 시절에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운동장에서 '교련'을 받곤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당시 나를 종종 아프게 했던 극심한 절망감으로 몸이 떨려온다. 무의미하고 판에 박힌 기계적인 훈련의 반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줄을 서고, 구령에 맞춰 손발을 내밀고, 강요된 동작의 일치 속에서 발을 쿵쿵 구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개성의 상실은 내겐 더없는 수치로 여겨졌다. 그리고 종종 그랬던 것처럼, 줄을 서는 데 다소 서툴다는 이유로 훈련 하사관이 내 잘못을 질책하거나, 그가 나를 "7번!"이라고 호칭할 때마다 나는 수치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기계의 일부가 되었고, 내 이름은 '7번'이었다. 간혹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즐겁고 열성적이고 활기차게 훈련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와 내가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분명 내 동급생들은 거의 대부분 교련을 즐기거나, 별생각 없이 그것을 치러냈다. 그들은 훈련 하사관과 친하게 지냈고, 그중 몇몇은 그와 '격의 없이' 나란히 걷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좌로, 우로! 좌로, 우로! 그때까지 나는 딱 벌어진 어깨와 굳은 얼굴,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의 그 남자를 미워했던 만큼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내게 하는 말 하나하나가 나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그가 보이면 나는 즉시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에게 경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몹시 고통스럽게도 몸이 신경질적으로 떨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살면서 내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였다. 나는 육체적이자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소년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신경 불안 증세도 어느 정도는 그 저주받은 교련 시간에 기인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내 성격의 고질적 문제였던 격한 자존심 역시 그 끔찍했던 순간들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한다. 물론 내겐 이전부터 그런 성향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건 고쳤어야 할 문제이지 악화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어떤 면에서는, 열렬히 또는 별생각 없이 징병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영국이 안전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복당해 피 흘리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영국은 이런 견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날이 온다면 영국을 위해서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아침마다 같은 방향으로 산책을 한다. 어린 낙엽송들의 조림지를 보기 위해서다. 이즈음 낙엽송들이 띠고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색은 이 지구 상에 없다. 그 색은 내 눈을 상쾌하고 즐겁게 하며, 마음속까지 깊이 스며든다. 머지않아 색이 변할 것이다. 빛나던 첫 신록이 벌써 여름철의 차분한 녹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낙엽송은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순간이 있다. 봄마다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한가로이 산책을 나가 낙엽송들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런 순간을 즐기는 데 필요한 마음의 평정까지 누리고 있는데, 살면서 이보다 경이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햇살이 비치는 어느 봄날 아침, 지극한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나머지 하늘과 땅을 찬미하는 데서 온전히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5만 명 중에 한 명이라도 될까? 얼마나 비범한 운명의 은혜를 입어야 어떤 근심이나 집착에도 방해받지 않고 대엿새 동안 간단없이 사색에 잠길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마음속에는 호사다마라는 믿음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그것도 상당한 근거와 함께―언젠가는 어떤 재앙이 닥쳐서 이처럼 신성한 평온함의 시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나는 일주일 남짓 운명의 지고한 축복으로 전 인류 가운데서 선택된 소수에 속해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이 차례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일생에 딱 한 번, 그것도 아주 짧게 찾아올 뿐이다. 내 몫의 운명이 보통 사람들의 운명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는 사실이 때로 내게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전문)
(...)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어떻게 일요일 고유의 정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평소에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우리 집 가정부는 그녀만의 일요일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일요일이라서 더 행복해하며,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녀는 되도록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녀의 일요일 복장은 오직 아주 사소하고 깨끗한 집안일만 하면 된다는 것을 내게 일깨워준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교회에 갈 것이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임을 나는 안다.
그녀가 없는 동안 나는 평일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 방들을 가끔씩 들여다본다. 그건 단지 이 선한 여인의 주변에서 어김없이 보게 되는 반짝이는 청결함과 완벽한 정리정돈으로 내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티끌 한 점 없고 향기로운 부엌이 없다면 내 책들을 정돈하고 그림들을 걸어놓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삶이 누리는 평온함은 눈에 띄지 않는 삶과 노동을 영위하는 이 여인의 충실한 보살핌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지급하는 봉급은 그녀가 받아야 하는 보상의 최소한일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매우 구식인 여성이라 자신의 의무라고 여기는 일을 이행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일은 그 자체로 그녀가 느끼는 만족이자 자부심인 것이다.
(...) 이제 나한테는 그런 마음가짐과 기회를 갖는 것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할 때면 언제라도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를 꺼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벗 삼는 특전을 누리기에 가장 적절한 때는 여전히 일요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멸성이라는 왕관을 쓴 위대한 작가들은 세속적인 근심에 쫓기는 것처럼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엄숙한 여가라는 옷과, 평온함과 조화를 이루는 생각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나는 다소 격식을 갖추어 책을 펼친다. '성스럽다'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게다가 책을 읽는 동안 그 어떤 것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나의 안식처 주위에서는 홍방울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책장 넘길 때 나는 바스락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다.
(...) 나는 더 이상 이런 기사는 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그 결심을 지킬 것이다. 이따위 글을 읽어봤자 아무 득 될 게 없는데, 뭐 때문에 애써 읽으면서 분을 못 이겨 몸을 부르르 떨고, 그로 인해 온종일 마음의 평화를 망친단 말인가? 다른 나라들이 서로 살육을 일삼는다 한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자들끼리 죽고 죽이게 내버려두자! 자기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자! 평화는 결국 소수만이 희구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끔찍한 재앙'이니 뭐니 하는 역겹고 위선적인 말은 이제 그만두자. 지도자들과 대중은 그런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저들은 전쟁에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이득을 간파하거나, 저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야만성 때문에 무분별하게 전쟁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저들끼리 서로 찢고 찢기게 놔두자. 저들이 피바다와 튀어나온 내장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하자. 그러다 저들 역시 구역질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저들이 곡물 밭과 과수원을 망치고, 집들을 불태우게 내버려두자.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말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요한 초원에서 자신의 길을 갈 것이고, 꽃들을 굽어보고 석양을 바라볼 것이다. 오직 이들만이 일고의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 내가 만약 충동적으로 그곳으로 달려갔더라면, 내 기억이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것과 같은 순간을 또다시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었을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장소'가 아니니까. 나는 내 삶의 어느 특정한 시기와, 그 순간과 적절하게 어우러졌던 상황과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그 언덕을 찾아가 그때처럼 빛나는 하늘 아래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면, 예전과 똑같은 맛을 느끼거나 그때처럼 위안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내가 깔고 앉는 잔디는 예전처럼 푹신할까? 높다란 느릅나무 가지들은 그 위로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을 그때처럼 기분 좋게 식혀줄 수 있을까? 그리고 휴식의 시간이 끝났을 때, 난 예전처럼 벌떡 일어나 내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열망하게 될까? 아니,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우연히 서픽의 그러한 풍경과 연결된 나의 예전 삶의 한순간일 뿐이다. 이제 그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곳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했던 곳이다. 우리 주위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같은 초원에 나란히 서 있다고 해도, 내 눈은 당신이 보는 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며, 내 마음은 당신이 느끼는 감동을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 자기 집에서 살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애정도 날로 커지는 법이다. 나는 데번의 이 모퉁이를 언제나 애정 어린 마음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디 요즘 내 안에서 날로 커져가는 애정에 비하겠는가! 우리 집에서부터 생각해보면, 나무토막 하나 돌멩이 하나도 내게는 모두 심장의 피처럼 소중하게 생각된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기 위해 문기둥을 지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것을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게 된다. 정원에 있는 나무와 관목은 모두가 나의 다정한 친구들이다. 나는 필요할 때는 그것들을 만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도 아주 조심스럽게 만진다. 부주의하거나 거친 손길로 그것들을 아프게 하거나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서다. 산책로에 나 있는 잡초를 뽑게 되면 그것을 버리기 전에 잠시 일말의 슬픔이 깃든 눈길로 바라본다. 그 잡초 역시 우리 집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정원을 돌보고 있는 성실한 친구는 나의 별난 취향 때문에 어리둥절해할 때가 많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면, 난 종종 그의 눈 속에서 놀라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가 화단을 흔히 하는 방식으로 배치하고, 집 앞에 있는 한 조각의 땅을 아주 깔끔하게 꾸미려 하는 것을 내가 도통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나의 고지식한 성격을 탓했지만, 이젠 그것만으로는 내 태도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온 동네 사람들이 수치스러워할 정도로 초라하고 수수한 정원임을 그로서는 납득하기도 어렵거니와, 나도 물론 그에게 해명하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선한 정원사는 아마도 너무 많은 책들과 고독하게 지내는 습관이 그가 나의 '정신 상태'라고 부르는 것에 얼마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지도 모른다.
정원에서 자라는 꽃들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장미, 해바라기, 접시꽃, 백합 같은 전통적인 꽃들뿐이다. 나는 이 꽃들이 되도록 야생화처럼 자라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말끔히 정돈된 대칭형의 화단이 정말 싫다. 그런 화단에 주로 심어지는 존시아니 스눅시아니 하는 괴상한 이름이 붙은 잡종 꽃들은 내 눈에 몹시 거슬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원은 어디까지나 정원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길가나 들판에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꽃들을 정원에다 옮겨 심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원에 옮겨 심은 디기탈리스를 보게 된다면 마음이 몹시 아플 것 같다.
특별히 디기탈리스를 떠올리는 것은 지금이 한창때이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매년 이맘때면 찾아가곤 하는 길에 가보았다. 수레바퀴 자국이 깊이 팬 길을 따라, 거대한 고사리과 식물로 뒤덮이고 느릅나무와 개암나무가 굽어보는 둔덕들 사이를 내려가면 서늘하고 풀이 무성한 구석진 곳이 나온다. 바로 그곳에 고귀한 꽃들이 거의 내 키만 한 줄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도 그보다 멋진 디기탈리스를 본 적이 없다. 그 꽃이 내게 이토록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 디기탈리스는 가장 인상적인 야생화다. 나는 물가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자줏빛 부처꽃이나 고요한 연못에 떠 있는 하얀 수련을 보려고 수 마일씩 걸어갔던 것처럼, 멋지게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디기탈리스를 보기 위해 언제라도 몇 마일씩 걸어가곤 했다.
그런데 우리 집 뒤에 있는 채소밭에 들어설 때면 정원사와 나는 즉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곳에 관한 한 그는 내가 아주 분별력 있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꽃을 가꾸는 일보다 채소를 기르는 일이 내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매일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채소들이 얼마나 '더 자랐나' 보기 위해 채소밭을 한 바퀴 돌아본다. 콩깍지가 부풀어 오르고, 감자가 건강하게 자라며, 무와 갓의 싹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면 행복해진다. 올해는 예루살렘아티초크를 한 뙈기 심었는데 벌써 7~8피트나 자랐다. 나무 몸통처럼 굵은 줄기와 아름답고 커다란 잎사귀를 바라보노라면 온몸에 힘이 솟는 것 같다. 붉은 강낭콩도 나를 즐겁게 해준다. 강낭콩은 거듭해서 줄기를 받쳐주지 않으면 꽉찬 열매의 무게 때문에 쓰러지고 만다. 바구니를 들고 채소들 사이를 다니면서 수확을 하노라면 특별한 기쁨이 느껴진다. 자연이 이처럼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나를 극진히 배려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푸성귀들의 냄새마저 얼마나 상쾌하고 건강에 좋은지! 특히 바로 얼마 전에 소나기가 내렸을 경우에는 더 그렇다!
올해는 멋진 당근도 조금 심었다. 쭉 뻗은 미끈한 원추형인데, 그 색깔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전문)
(...)/ 나는 요즘 조팝나물 때문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되도록 다양한 조팝나물들을 서로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각각의 이름을 익히는 중이다. 나는 과학적인 분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은 나의 사고방식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꽃들을 각자의 이름으로(가급적이면 '향명'으로)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오, 이건 조팝나물이잖아"라고 부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모든 노란색 설상화를 '민들레'로 취급하는 것보다 약간 나을 뿐이다. 꽃들 각자의 개성을 알아봐주면 꽃들도 기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꽃들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각각의 꽃을 구별해서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이유로 나는 '히에라시움'이라는 학명보다는 '조팝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좋다. 평범한 말이 더 친근하게 들리는 법이다.
(...)/ 얼마 전에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문득 괴테와 실러가 주고받은 《서간문》이 떠올랐다. 나는 얼른 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나서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존슨을 잠자리에서 끌어냈다는 오래된 버턴의 책보다 훨씬 더 값진 책이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부질없거나 독기 서린 말들을 잊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이런 멋진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책인 것이다.
나는 이런 책들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다. 읽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손을 뻗어 책꽂이에서 꺼낼 수 있도록.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책을 구하기가 어렵거나 시간이 걸릴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쉬거나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버린다. 아! 다시는 읽지 못할 책들이여! 그 책들은 내게 기쁨을 주었고,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내 기억 속에 향기를 남겼지만 삶은 그 책들을 영영 지나쳐버리고 만 것이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 보면, 책들이 눈앞에 하나씩 차례로 떠오른다. 부드럽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책,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고귀한 책, 한 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숙독할 가치가 있는 책, 나는 이제 그 책들을 다시는 손에 들지 못하리라. 세월은 너무 빨리 흘러가는데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어쩌면 침대에 누워 임종을 기다릴 때 그 잃어버린 책들 중 몇몇이 나의 방황하는 생각 속에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한때 신세를 졌던 친구들, 살며시 마주쳐 지나갔던 친구들을 기억하듯 그 책들을 기억하게 되리라. 책들에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할 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 일생을 잘 살았다는 증거를 '명예, 사랑, 복종, 많은 친구들'에서 찾아야 한다면, 나는 보통의 이상적인 삶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아온 게 분명하다. 내게도 친구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아주 소수일 뿐이다. 영예와 복종이라, 글쎄, 기껏해야 M. 부인 정도나 이런 축복들을 대표할 수 있으려나? 사랑으로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한때라도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몰두했으며,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고, 터무니없이 오만했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친구가 많아 보여도 홀로 살다가 혼자 죽게 되어 있다. 나는 그 점을 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마다 고독과 침묵 속에 누워서도 그런 처지인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적어도 난 누구를 힘들게 하지 않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인 것이다. 나의 마지막 날들에 오랜 병고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삶을 조용히 향유하다가 단번에 마지막 안식처로 건너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면 그 누구도 나에 대해 고통스러운 연민을 느끼거나 지겹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든 간에, 나의 죽음을 마음 아파해줄 사람이 한두 명, 어쩌면 세 명쯤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나 자신이 어쩌다 한 번씩 다정하게 기억해주는 대상 이상의 존재일 거라는 착각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그것은 내가 완전히 잘못 살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한 일상은 내가 꿈조차 꾸지 못했을 은혜를 베풀어준 이의 선한 행위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만족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 나로 말하자면, 돈 없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어리석은 짓들을 언젠가 한번쯤은 모두 저질러보았다고 할 수 있다. 천성적으로 내게는 합리적으로 나 자신을 이끄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소년 시절이나 어른이 되어서나 가는 길이 마주치는 모든 도랑과 수렁에 어김없이 빠지곤 했다. 나만큼 쓰라린 경험의 수확을 많이 거둔 어리석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느라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찰싹, 찰싹!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매를 맞고 간신히 회복이 될 만하면 난 또다시 매 맞을 짓을 하곤 했다. 점잖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 "현실 감각이 없다"고 했고, 입이 좀 거친 사람들은 나더러 "멍청하다"고 했는데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걸어온 멀고 험한 길을 되돌아볼 때마다 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분명 뭔가가 부족했었는데, 그건 정도의 차이만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루 부여된 일종의 균형 원리가 아니었나 싶다. 나한테는 지적 능력이 있었지만, 살면서 겪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를 미궁에서 건져내 지금의 낙원에서 살게 해준 행운이 없었더라면, 나는 분명 죽을 때까지 그 속에서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그러다 내가 비로소 진정으로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려는 순간, 경험의 마지막 채찍이 결정적으로 나를 쓰러뜨리고 말았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무엇보다 죽음에 대해 덜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자유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아주 자주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난 분명 자유인이다. 죽음은 내게 아무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죽음이 내가 부양해야 할 이들에게 재앙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내 존재의 단절 자체가 나를 괴롭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고통을 잘 견디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고통스러워해야 할 생각을 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평생 압박감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오는 동안에도 남자다운 의연함으로 운명과 맞서 싸웠던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 한낱 병에 걸렸다는 약점 때문에 불명예를 당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암울한 예감에 자주 시달리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길에서 벗어나 시골 교회의 묘역을 가로질러 산책을 하곤 한다. 도시의 공동묘지가 불쾌한 만큼 시골의 안식처는 나를 매혹한다. 나는 묘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여기 누워 있는 모두에게는 삶에 대한 조바심과 두려움이 모두 끝났거니 생각하며 깊은 위안을 받는다. 나는 조금도 슬픔에 젖지 않으며, 여기 잠든 이가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모두가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했음을 느낀다. 그들은 삶의 종말을 맞이했고 그 종말과 더불어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니, 그 종말이 조금 늦게 찾아왔건 조금 일찍 찾아왔건 그런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여기 잠들다(Hic jacet)라는 묘비명보다 더 큰 경하(敬賀)의 말이 있을까?
세상의 그 어떤 존엄함도 죽음의 존엄함에 비길 수는 없다. 이들은 가장 고귀한 인간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것을 이들이 성취한 것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 슬퍼해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살아져버린 삶을 생각하면 따뜻한 형제애가 느껴진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적막 속에서 죽은 이들이 아직 이 세상에 머뭇거리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대도 우리처럼 되리라. 그러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고요함을 바라보시라!" (전문)
들에서 일하는 농부가 그와 함께 일하는 가축과 같은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미련해빠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오늘날 소농의 삶을 살려 하지 않을 거라고들 한다. 신문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받은 그의 자녀들은 서둘러 약속의 땅, 신문이 만들어지는 도시로 떠나려고 한다. 여기에서 무언가가 아주 잘못되었음을 알기 위해서는 전도사의 설교까지 들을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어떤 선지자도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우리 시대에 농사를 과장되게 미화하는 찬사는 대부분 허황된 것으로, 농군의 삶이 그 자체로 온화한 감정들과 감미로운 사색과 모든 인간적인 덕성들의 함양에 유리하다는 거짓을 사실인 양 입증하고자 애쓴다. 농사는 가장 진을 빼는 형태의 노동 중 하나이며, 그 자체로는 정신적인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 역사를 살펴볼 때 문명화 과정에서 농사가 한몫을 담당했다면, 그것은 단지 부를 창출함으로써 일부 사람들을 쟁기질의 노역에서 해방했다는 사실에 기인할 뿐이다. 어떤 열성적인 이들은 스스로 농부가 되어보는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중 한 사람은 주목할 만한 말로 자신의 경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오, 노동은 세상의 저주요. 누구라도 노동에 관여하는 사람은 그 정도에 비례하여 짐승 같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소. 소와 말을 먹이는 데 내 금쪽같은 다섯 달을 보낸 것이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아요."
너새니얼 호손은 브룩 농장에서의 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씁쓸한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의 말에는 과장이 담겨 있다. 노동은 증오할 만하고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일지도 모르고, 종종 그렇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노동이 세상의 저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노동은 세상의 지고한 축복이다. 호손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고, 정신적 균형의 상실로 그 대가를 치렀다. 소와 말을 먹이는 것은 그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의 보다 고귀한 측면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농사는 인류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호손의 글이 흥미로운 것은, 호손처럼 지적인 사람이 농촌 생활에 반발하다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오늘날의 농군들과 같은 정신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의 지성이 정지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정서마저 참된 길잡이 노릇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장래에는 엔진을 다루며 좋은 보수를 받는 기계공이 지금의 농사꾼을 대체할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는 일을 하면서 뮤직홀에서 들었던 노래의 마지막 후렴구를 흥얼거릴 것이다. 그리고 자주 돌아오는 휴일에는 인근 대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한 듣기 좋은 말들은 그에게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아마 꽃들도, 적어도 경작지와 목초지의 꽃들은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제거되고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말에는 십중팔구 노령연금으로 살아가는 은퇴한 농부들의 공동 거주지라는 특정한 의미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사람 좋은 S가 내게 다정한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내가 혼자 외롭게 지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름철이라면 그런 곳에서 살기로 마음먹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겨울에는 도회지로 와서 지내는 게 훨씬 낫지 않겠냐고 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음산한 날들과 긴긴 밤들을 보낼 수 있겠냐면서 말이다.
나는 S가 나를 염려하는 것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살기 좋은 이곳 데번에서는 스산한 날이 드물 뿐만 아니라, 그런 날조차도 내게 지루함을 안겨준 적은 한 번도 없다. 북부의 길고도 혹독한 겨울이라면 내게 정신적 시련을 안겨주었겠지만, 이곳의 겨울은 가을 뒤에 찾아오는 안식의 계절이며, 자연이 1년에 한차례식 수면을 취하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겨울이 느끼게 하는 휴식에 동참한다. 한 시간 동안 난롯가에서 졸기만 할 때도 종종 있다. 책을 내려놓고 차분히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을 때도 많다. 이곳의 겨울은 햇빛이 비칠 때가 많으며, 그 부드러운 빛은 자연이 꿈꾸면서 짓는 미소와도 같다.
밖으로 나가 먼 데까지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도 있다. 잎들이 떨어지고 난 뒤 풍경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그럴 때면 여름 동안 가려져 있던 개울이며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즐겨 걷던 오솔길은 낯선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그 모두와 조금씩 친해지는 법을 배워간다. 헐벗은 나뭇가지에는 희귀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나뭇가지들 위에 눈이나 서리가 내려앉아 수수한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 장식무늬를 연출하면 아무리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경이로운 풍경이 된다.
나는 매일매일 보리수나무의 산호색 싹들을 관찰한다. 싹들이 개화하기 시작하면 기쁨과 더불어 어떤 아쉬움이 느껴질 것 같다.
내 인생의 최악의 시기였던 중년에는 밤에 나를 잠에서 깨우곤 하는 겨울 폭풍우 소리를 무서워했다. 거세게 집을 때리던 바람과 비는 구차스러운 기억들과 두려움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나는 잠자리에 누운 채 인간들끼리의 야만적인 투쟁에 대해 생각했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삶이라는 진창 속에서 짓밟히고 말 운명뿐이라고 믿을 때가 많았다. 바람이 울부짓는 소리는 고뇌하는 세상이 나를 향해 외치는 목소리이며,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약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난 밤에 잠자리에 누워 휘몰아치는 폭풍우 소리를 들으면서도 견디기 힘든 생각 같은 것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라도,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애틋한 슬픔에 잠길 뿐이다.
이제 난 포효하는 어둠 속에서도 안락함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벽이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고, 고생스러운 시절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군색한 위기에서 벗어나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어라, 불어라, 그대 겨울바람이여!"*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그대가 날려버리지는 못할 것이니.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비"**도 나의 영혼이 의문을 품게 하지는 못하리라. 삶은 내가 바랐던 모든 것을, 아니 내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게 주었고, 내 마음속 어디에도 죽음에 대한 비굴한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
*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2막7장
** 테니슨의 시 '록슬리 홀'에서 인용한 것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서나 가장 흔하게 회자되는 격언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돈은 시간이다'라는 소중한 진리를 알게 된다. 아침마다 엷은 안개가 끼어 어둑하게 시야를 가리는 요즘, 나는 서재에서 타닥거리며 힘차게 타오르는 근사한 난롯불을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이 진리를 곱씹곤 한다. 내가 너무나 가난해서 이처럼 기분 좋게 해주는 불을 피울 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나의 하루는 지금과는 얼마나 다를 것인가! 지난날 내 마음을 조화롭게 해주는 데 필요한 물질적 안락을 갖추지 못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허비해야 했던가!
돈은 시간이다. 돈이 있다면 나는 시간을 사서 즐겁게 쓸 수 있다. 돈이 없다면 어떤 의미로든 내 것이 될 수 없을 시간을 말이다. 아니, 더 나아가 나는 그 시간의 처량한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돈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사는 데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돈을 제대로 쓴다는 의미에서 볼 때는, 돈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도 돈이 충분히 없는 사람만큼이나 가난한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우리의 일생은 결국 시간을 사거나 사려고 애쓰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시간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전문)
(...)/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앞으로 몇 년 정도는 더 살고 싶다. 하지만 내게 1년이 채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나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과 불화하며 살았을 때는 죽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런 인생의 목표도 없이 살았을 것이고, 그 끝은 갑작스럽고 무의미하게 여겨졌을 터였다. 이제 내 인생은 완성된 셈이다. 내 삶은 어린 시절의 타고난 본능적인 행복감으로 시작해, 성숙한 정신이 보여주는 차분한 평온함으로 끝을 맺으려 한다.
글을 쓰느라 오랫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끝을 맺고는 감사의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완성한 작품은 결함투성이였지만, 나는 성심을 다해 글을 썼으며, 내 시간과 상황 그리고 내 천성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했다. 나의 마지막 순간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내 일생을 제대로 끝맺음한 긴 과업으로만 여길 수만 있다면, 비록 결함이 많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완성한 한 편의 전기로 여길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마침내 "끝"이라고 조용히 말한 뒤 뒤따라올 안식을 기꺼이 맞이하며 만족스럽다는 생각만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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