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1877~1962)
"많은걸 누릴수 있지만 타향은 나를 실망시킨다"
독일을 등졌지만 끝내 독일을 사랑했던 대문호
허연 기자, 시인
[매일경제] 2021.08.21 0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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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독일인이었지만 고국을 부정하고 스위스에서 오래 살았다. 그에게 고향 독일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의 고향은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 칼브다. 헤세는 이곳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산다. 초등학교 시절 잠시 스위스 바젤의 신학교에 가 있기도 했지만 헤세는 칼브에서 어른이 됐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헤세는 신학교에 보내졌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탈출해 공장 견습공, 서점 직원 등을 전전했다. 헤세는 22세가 되던 해 '시인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외치며 고향을 떠났다. 이후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조국 독일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스위스로 망명한다. 그는 1962년 8월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사망했다.
이쯤 되면 헤세에게 고향은 그다지 그리운 땅이 아니었을 것 같다.
과연 고향 칼브는 헤세에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을까. 여기서 반전이 있다. 헤세가 노년에 쓴 산문집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보면 고향 칼브를 거론한 부분이 있다.
"칼브의 수많은 사람들을 나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개나 고양이도 없었다. 다리 위로 달려가는 마차를 보면 나는 그것이 누구의 소유인지 다 알 수 있었다. 학교 친구들의 별명이 무엇인지도 일일이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빵집들을 알고 있었고, 그 안에 어떤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지도 다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이 마을 안에 있는 나무들과 그 위에 사는 풍뎅이와 새들, 그 둥지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수많은 정원 어디에 딸기가 열리는지도 알고 있었다."
헤세에게 고향은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이었다. 나무 위에 사는 새들과 풍뎅이까지도 다 알고 있는 이 익숙함은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흥이다. 고향은 숙명 같은 곳이다. 기쁨이자 슬픔, 환희이자 상처였던 곳이다. 철들고 성장한 이후 만난 어느 곳도 '고향'이 되어줄 수는 없다. 이미 나는 고향에서 다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무가 아무리 가지를 뻗어 나가도 뿌리를 박은 그 자리에서 생명의 자양분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헤세의 말을 한 줄 더 옮겨보자.
"많은 길을 나는 또다시 돌아서 갈 것이다. 수많은 것이 충족되겠지만 그것들은 나를 여전히 실망시킬 것이다."
타향이 많은 것을 충족시켜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타향은 타향일 뿐이라는 말이다.
언젠가 외신에서 흥미로운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영국을 떠들썩하게 한 은행 강도가 훔친 돈을 들고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은 나라에 가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TV에 나와 영국을 조롱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노년에 자기 발로 영국에 돌아와 공항에서 경찰에 자수를 했다. 기자들이 왜 영국에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죽기 전에 고향 선창가에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고향은 이런 존재인가 보다.
허연 (시인/ 매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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