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사는 곳은 불로동 옆의 봉무동이고, 행정구역상으론 불로-봉무동이다. 거기서 서쪽으로 금호강을 건너면 검단동이다. 그러니까 불로-봉무동은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검단동과 마주보고 있다. 오늘은 아침을 먹은 후 옛 동산의 하나인 검단동의 앞산에 올라가 보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내가 '옛 동산'이라고 한 것은 검단동이 나와 인연이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 산 아래에 외갓집이 있었고, 나중에는 그 외갓집이 이모네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일 때에는 학굣길이 너무 멀어서 그 이모네에서 학교를 다녔었다. 지금은 그곳에 집을 새로 지어 이종 동생 가족이 살고 있다.
굽힌 팔꿈치처럼 돌아서 흘러가는 금호강의 안쪽에 자리 잡은 검단동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완만한 지형인데, 강을 사이에 두고 불로동과 마주보는 이 동산이 검단동에선 유일한 산이다. 높이는 해발 200m쯤 될까.
집을 나와 금호강 우안 강둑길을 달려 공항교를 건너서 금호강 좌안의 자전거길을 조금 따라가다가 왼편의 야트막한 언덕길로 들어섰다. 이 언덕은 아주 오래전 엄마와 이모들이 젊었을 적에 빨랫감을 이고 강가의 빨래터까지 오르내리던 곳이다. 그리고 어린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강을 건너 외갓집에 가던 길이기도 하다.
언덕에서 산을 향해 왼쪽으로 올라가는데, 지금은 들머리에 찻길이 나고 공장들이 지어져 있어서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이모네 집 앞에 있던 동사무소도 최근에 이 언덕으로 옮겨와 새로 지은 빌딩에 '검단동 행정복지센터'라는 번듯한 간판을 달고 있었다. 오솔길은 가파르고 험해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중턱의 숲에는 여전히 채 씨 문중의 제실이 있었고, 그 앞에는 비석들이 새로 세워져 있었다.
산마루에 올랐을 때는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풀만 있던 민둥산이 상수리, 아까시(아카시아) 등의 아름드리 큰키나무들로 울창했다. 그 옛날, 친구와 밤새워 술을 마시던 자리가 어디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고, 그때 무슨 개똥철학을 그렇게 새벽까지 얘기했는지, 이야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멀리 북쪽으로 올려다 보이던 고향 팔공산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동쪽으로 훤히 내려다 보이던 동촌비행장 활주로는 나뭇잎 사이로 조금만 보였다. 하늘이 손바닥만큼 트인 곳에는 누가 씨를 뿌렸는지 채송화가 몇 송이 피어 있었고 코스모스도 자라고 있었다. 오랜만에, 더군다나 옛 동산에서 만난 꽃이니 반가울 수밖에.
옛 동산에서 바라볼 수 없었던 팔공산을, 돌아오는 길에 나에겐 이제 '옛 다리'가 된 공항교 위에서 자전거를 잠시 세우고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간밤에 제법 많은 비를 뿌린 구름이 아직 덮고 있어서 팔공산 세 주봉主峰은 여기서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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