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1
오탁번
2022년 세밑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옆구리가 아프고
명치가 조여온다
소리를 보듯
한 달 내내 한잔도 못 마시고
그냥 물끄러미 술병을 바라본다
무슨 탈이 나기는 되게 났나 보다
부랴사랴
제천 성지병원 내과에서
위 내시경과 가슴 CT를 찍고
진료를 받았는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다
(참신한 비유는 엿 사 먹었다)
췌장, 담낭, 신장, 폐, 십이지장에
혹 같은 게 보인단다
아아, 나는 삽시간에
이 세상 암적 존재가 되는가 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1초쯤 지났을까
나는 마음이 외려 평온해진다
갈 길이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가는 것보다야
개울 건너 고개 하나 넘으면
바로 조기, 조기가 딱 끝이라니!
됐다! 됐어!
—2023. 01.05
—시집 『속삭임』 2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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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1943~2023) /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66년 동아일보 (동화), 1967년 중앙일보 (시), 1969년 대한일보 (소설)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장갑』 『오탁번시전집』 『손님』 『우리 동네』 『시집보내다』 『알요강』 『비백』 『속삭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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