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밤눈 - 오탁번

공산(空山) 2024. 2. 18. 11:24

   밤눈

   오탁번

 

 

   박달재 밑 외진 마을

   홀로 사는 할머니가

   밤저녁에 오는

   눈을 무심히 바라보네

   물레로 잣는 무명실인 듯

   하염없이 내리는

   밤눈 소리 듣다가

   사람 발소리? 하고

   밖을 내다보다 간두네

 

   한밤중에도 잠 못 든

   할머니가

   오는 밤눈을 내다보네

   눈송이 송이 사이로

   지난 세월 떠오르네

   길쌈 하다 젖이 불어

   종종걸음 하는 어미와

   배냇짓하는 아기도

   눈빛으로 보이네

 

   빛바랜 자서전인 양

   노끈 다 풀어진

   기승전결

   아련한 이야기를

   밤 내내

   조곤조곤 속삭이네

   밤눈 오는 섣달그믐

   점점 밝아지는

   할머니의 눈과 귀

 

 

   —『동리⸳목월』2022. 가을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환생 - 이운진  (0) 2024.02.22
눈물로 간을 한 마음 - 오탁번  (0) 2024.02.18
속삭임 1 - 오탁번  (0) 2024.02.18
겨울밤 - 박용래  (0) 2024.02.15
바람 부는 날 - 김종해  (0)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