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숲 - 이영광

공산(空山) 2024. 2. 12. 09:34

   숲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기합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유심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딱따구리와 저녁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통과시켜 주고도 제자리에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늘과 사귀다』 2007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밤 - 박용래  (0) 2024.02.15
바람 부는 날 - 김종해  (0) 2024.02.12
약속의 후예들 - 이병률  (0) 2024.02.05
흑백 무지개 - 강나무  (0) 2024.02.03
돌베개의 시 - 이형기  (0) 202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