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제페토의 숲 - 김희준

공산(空山) 2023. 6. 25. 10:34

   제페토의 숲
   김희준(1994~2020)
 

   거짓일까 바다가 격자무늬라는 말,   
 
   고래의 내장에서 발견된 언어가 촘촘했다 아침을 발명한 목수는 창세기가 되었다 나무의 살을 살라 말을 배웠다
 
   톱질 된 태양이 오전으로 걸어왔다

   가지 마, 나무가 되기 알맞은 날이다 움이 돋아나는 팔꿈치를 가진 인종은 초록을 가꾸는 일에 오늘을 허비했다 숲에는 짐승 한 마리 살지 않았다 산새가 궤도를 그리며 날았다

   지상의 버뮤다는 어디일까   
   숲에서 나무의 언어를 체득한다

   목수는 톱질에 능했다 떡갈나무가 소리 지를 때 다른 계절이 숲으로 숨어들었다 떡갈나무 입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목수는 살목범殺木犯이었으므로

   진짜일까 피노키오, 피노키오 떡갈나무 피노키오 개구쟁이 피노키오 피노키오, 피노키오 귀뚜라미 떡갈나무 요정은 피노키오를 도와주지요 삐걱삐걱삑삑삐걱삐걱삑삑삐걱삐걱삑삑 삐걱삐걱삑삑 개구쟁이 피노키오 나무인형 피노키오 피노키오 피노키오

   숲으로 가게 해주세요

   나무는 물기가 없었다 바람은 간지러운 휘파람이 되었다 빽빽하게 그린 나무의 결이 달랐다 동급생 사이에 전염된 그림, 면역체계를 찾으려면 격자무늬를 수혈 받아야 한다
 
   소리를 가져간 피노키오 숨이 언어인 피노키오 참말 하는 피노키오 떡갈나무 피노키오 삐걱삐걱 피노키오 진짜일까 피노키오 나무인형 피노키오

   모든 책이 은밀해졌을 때 나는 쫓겨났다   
   저 너머를 건너는 거짓말이 길어졌다

   피노키오가 인간을 키운다 다각형 몸이 심해에 잠긴다 고래가 뒤척일 때 인간은 나무가 되었다 나무는 나를 읽어낸다
 
   해체된 태양이 떠오르는 남쪽에서부터 창세기가 시작되고
   나는 제자리걸음을 한다
 
   사라진 숲의 버뮤다에 새들이 궤도를 바꿔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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