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 동물원을 위하여·3 - 엄원태

공산(空山) 2023. 6. 18. 20:52

   이 동물원을 위하여·3

   ―고라니 울음

 

 

   신참인 저 고라니는 별난 부적응자인가

 

   저녁이면 속엣것을 전부 토해 내며

   제 인후부를 마구 긁어 대는 울음을 운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비명처럼 저리 운다고 한다

 

   고라니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제 분수엔 턱도 없을 꿈이지만

   멧돼지가 되려는 것보다는 더 그럴듯한 꿈인 건 분명하다

   꿈이란 게 그런 것일지도 모르니까

 

   지도부에게 저 울음은 꽤 거슬리는 것일 터

 

   그 울음은 제 안의 짐승을

   모두 토해 내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첩보에 따라

   신속한 중단 조처에 처해졌고

   울음은 조금 더 처절하게 며칠 이어지다 말았다

 

   잘 운다고 고라니가 표범이나 사람이 되진 않을 텐데

   이 동물원에선 그런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편 갈라 물어뜯는 것이 사람의 것인 동물원에서라면

   사람의 말이 짐승의 소리로 넘쳐 나는 이 동물원에서라면

 

   짐승들이 서로 물어뜯지 않고

   그저 잘 울기만 하면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 없겠다 싶기도 했다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웹진_콤마》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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