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니 우리집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톱이 두 자루 있다. 하나는 큰 톱이고, 다른 하나는 큰 톱에 비해 폭과 길이와 이빨의 크기가 작은 톱이다. 작은 톱은 몇 해 전에 벌초를 하면서 연장을 다루는 데 서툰 재종질(再從姪)이 톱날 끝부분을 부러뜨린 것을 내가 그라인더로 다듬어서 길이가 예전보다 더 짧아졌다. 아버지 돌아가신지가 15년째이니 작은 톱의 나이는 한 서른 살은 된 것 같다. 큰 톱은 당신께서 사 오신 뒤 몇 년밖에 사용하지 못하셨으니 스무 살 남짓 되었겠다.
어제 산가에 다녀오면서 빈집을 지키고 있던 그 두 자루의 톱을 아파트로 가지고 왔다. 산가는 춥기 때문에 따뜻한 아파트에서 오랜만에 톱을 쓸어 보기 위해서였다. 톱을 가지고 오면서 철물점에 들러서 줄도 하나 샀다. 새 줄은 옛 줄에 비해서 너비와 길이가 절반 정도로 작고 눈(표면)이 고왔지만 톱이 잘 쓸렸다. 아마도 아버지가 이 새 줄을 써 보셨더라면 제조기술의 발전과 향상된 성능에 탄복하셨을 것이다.
어릴 적에 나는 아버지가 톱날을 쓰시는 걸 많이 보았고 아버지를 따라 직접 쓸어보기도 했기 때문에 톱 쓸기를 할 줄 안다. 아버지는 톱뿐만 아니라 낫, 도끼, 끌, 대패, 자귀, 작두, 칼, 송곳 등의 연장들을 항상 연마하여 잘 드는 상태로 사용하셨다. 연장의 정비를 잘 해야 일이 수월해지고 삶이 편해진다는 것이 아버지의 몸에 밴 철학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나도 연장을 연마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부지런한 편이라고 자부해 본다. 물론 아버지에겐 훨씬 못 미치지만.
거실 바닥에 앉아 큰 달력 종이를 깔고 그 위에서 톱을 쓸기로 했다. 그런데, 톱날을 쓸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줄 끝부분의 평평한 모서리로 톱의 몸체에 눌어붙어서 굳은 송진이나 녹을 깨끗이 긁어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한쪽 눈을 감고 톱날을 세로로 보면서 톱날의 좌우 벌림이 적당한지 확인해 봐야 한다. 벌림 상태가 미흡하면 일자 드라이버 같은 공구로 톱날을 좌우 지그재그로 벌리면서 열(列)을 맞춰 줘야 한다. 톱을 사용하다 보면 톱날 벌림 정도가 줄어드는 수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나무를 벤 틈에 톱이 끼여서 베기 작업을 계속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톱날을 쓸어야 하는 순서가 되었다. 아버지는 한쪽 발로 톱을 받치고 다른쪽 발로 톱자루를 누르며 톱을 쓸으셨다. 그런데 나는 그 자세가 잘 되지 않아 플라스틱 통으로 톱을 받치고 한쪽 손으로 톱을 잡은 채 쓸었다. 톱날은 사람이 당기는 쪽으로 좌우, 미는 쪽으로 좌우, 모두 네 방향으로 날이 서 있다. 먼저 톱날을 하나씩 건너뛰면서 한쪽 방향으로 쓴 뒤에 톱의 방향을 바꾸어 다시 톱날을 하나씩 건너뛰면서 쓴다. 그런 다음 톱을 뒤집어서 쓸고, 자루의 방향을 바꾸어 쓸면 네 방향에서 쓸기가 모두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네 방향 쓸기를 매번 할 필요는 없고, 보통은 톱을 당기는 쪽 두 방향에서만 쓸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몇 년 만에 톱을 쓸어 보았다. 톱을 쓸면서 어찌 옛 생각이 간절해지지 않았겠는가. 저 톱이 있어서 가마솥의 소죽이 조석으로 끓었고 방 안 시렁에 매달린 메주들이 잘 뜰 수 있었으며 겨울이 따뜻했었다. 아버지와 함께 지게 지고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그 따뜻하던 아랫방에선 저녁마다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던 시절로, 그리고 초가지붕 밑 처마에 닿도록 장작이 가득 쌓여 있던 옛집으로 먼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다.
그런데, 지금 톱은 쓸어서 어디다 쓰려고? 이제 날이 좀 풀리면 저 톱과 전지가위를 들고 텃밭에 나가서 몇 그루밖에 없는 복숭아나무와 대추나무, 감나무의 가지치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담 밖에 서 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지붕을 때리는 잣나무 가지도 몇 개 자르고, 마당에 걸어놓은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필 일이 생기면 장작도 좀 잘라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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