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파란 코끼리 - 강보원

공산(空山) 2023. 4. 19. 20:19

   파란 코끼리

   강보원

 

 

   그는 걸었다. 그는 방금 국민은행을 지나쳤고, 국민은행을 지나 이바돔감자탕을 지나 지하로 통하는 술집을 지나 족발보쌈집을 지나 걸었다. 그는 걸었는데, 건물 2층 코인노래방을 지났고 스시정을 지나 배스킨라벤스를 지나 던킨도너츠를 지나 하나은행을 지났고 기업은행을 지나 걸었다. 그러니까 그는 꽤 번화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계속 걸었다. 소울키친을 지나 커피빈을 지나 카페B를 지나 그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를 지나 주민 센터를 지나 무아국수……가 보이는 곳에서 그는 멈췄다.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

 

   그는 무아국수에서 등을 돌려 주민 센터를 지나 다시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에게로 돌아왔다. 그 파란 코끼리는 분명 카페B와 주민 센터 사이에서 코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는 파란 코끼리가 코로 눈을 비비는 것을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 긴 코로 눈을 비비는 파란 코끼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걸었다. 긴 코로 눈을 비비고 있는 파란 코끼리를 지나 주민 센터를 지나 무아국수를 지나 무등산갈비를 지나 천가게를 지나……

 

 

   —『완벽한 개업 축하시』 민음사, 2021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딱새 놀다 가는 - 김용만  (0) 2023.04.26
제비들, 분지의 하늘을 날다 - 유가형  (0) 2023.04.20
분홍의 서사 - 서안나  (0) 2023.03.25
사모곡 - 감태준  (0) 2023.03.21
구릉 - 강대선  (1) 20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