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구릉 - 강대선

공산(空山) 2023. 3. 19. 20:38

   구릉
   강대선(1971~ )
 
 
   아가미를 버들가지에 꿰인 메기가 탁자에 앉아 있다
 
   딸려온 물빛이 거무스름하다
   물내가 전부였을 것 같은 저 입으로
   뻐끔거리는 허공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바라보려는 듯 눈을 부라린다 수염은 그가 한 마을의 유지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구릉이 실은 고분이었다는 구깃구깃한 신문기사가 메기 앞에 놓인다
 
   고분에는 왕이었을 어쩌면 한 고을의 유지였을 사람의 뼈와 금으로 된 장신구가 신발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신발이 수염이었을까
 
   구릉속으로 유영을 하는 메기가 버들가지를 빠져 나온다
 
   한때는 잘 나갔던 기억으로 살아온 주인장이 하품을 한다. 눈물이 찔끔거리는 메기가 끓는 탕 속으로 몸을 던진다 구릉은 왠지 메기의 잘 나가던 한 때처럼 쓸쓸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발처럼 남겨진 버들가지를 허공으로 보내준다
 
   한 번은 어디론가 훨훨 날아보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遺志(유지)였다
 
 
   ―『광주일보』, 2019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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