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그곳이 멀지 않다』민음사 1997.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금창고 - 이문재 (0) | 2023.03.14 |
---|---|
역(驛) - 한성기 (0) | 2023.03.01 |
겨울, 횡계 - 박제영 (0) | 2023.02.17 |
아침 - 박경리 (0) | 2023.02.11 |
히말라야의 노새 - 박경리 (0) | 2023.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