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겨울에 만나서 더 반가운 친구들 ㅡ 호접란과 동백

공산(空山) 2023. 1. 20. 18:16

겨울은 텃밭에 나갈 일이 많지 않는 농한기라서 적적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좀 여유로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도 실내에서 꽃을 피우는 호접란을 한 포기 키워보고 싶어졌다. 유튜브에서 호접란 키우기를 검색하여 공부를 좀 하고 나서 홍자색 꽃이 아름다운 '만천홍'이라는 품종 두 포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배달 과정에서 동해를 입지 않도록 보온재로 꼼꼼히 포장한 박스를 조심스레 뜯었을 때, 거기엔 뜻밖에도 순백색 꽃을 피운 것도 한 포기 들어 있었다. 난원에서 서비스로 다른 품종을 한 포기 더 보낸 것이었는데, 반갑고 고마웠다. 흰 꽃은 꽃대가 하나였지만 만천홍은 포기마다 꽃대가 두 개씩이었고, 꽃대의 아래쪽 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애초에 두 포기를 주문한 것은 설에 아들이 오면 한 포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호접란은 수태로 꽉 채운 비닐화분에 심겨 있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분갈이를 하지 않아야 꽃을 오래 볼 수 있다는 설명이 딸려왔지만, 나는 당장 분갈이를 하기로 했다. 비닐 화분을 벗기고 뿌리에 감긴 수태를 뜯어냈을 때, 예상했던 대로 속뿌리는 이미 썩어 있었고 화분 벽면을 따라 뻗어나간 뿌리들만 살아 있었다. 땅속에 뿌리를 내리는 지생란이나 나무껍질에 붙어 사는 착생란이나 난초과 식물들은 모두 뿌리에 물을 흠뻑 머금을 수 있는 스펀지(해면) 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과습을 싫어하고 공기호흡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비닐 화분에 꽉 채워진 과습의 이끼 속에서 그동안 난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지 짐작이 갔다.

나는 도자기 화분에다 녹소토를 채우며 호접란을 심었다. 녹소토는 물빠짐과 통기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습도를 오래 유지하기 때문에 난석(蘭石)으로 많이 쓰여진다. 그런데 서양란인 호접란은 잎이 크고 두터워서 가냘픈 동양란에 비해 영양분을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므로 가끔 알비료를 얹어주어야 할 것이다. 토분에다 심으면 더 좋겠지만, 예전에 방안 머리맡에 둔 토분이 방사성 기체인 라돈을 방출하여 실내 농도 기준치인 4pCi(피코퀴리)를 넘기는 것을 본 뒤로 나는 토분을 쓰지 않는다. 물론 토분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또 집 안에 두는 화분에는 밭흙도 담지 않는데, 그것 역시 화강암 성분이라 라돈을 많이 내뿜기 때문이다.

호접란을 도자기 화분과 난석(녹소토)에다 심었다.


며칠 전에 나는 또 포트에 심긴 애기동백 두 그루를 샀다. 택배를 받고 보니 키가 한 뼘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한 그루는 꼭대기에 벌써 꽃봉오리를 하나 달고 있었다. 홑꽃이면 좋겠지만 겹꽃이면 또 어떠랴. 애기동백은 나무의 키와 잎의 크기가 좀 작고 잎 뒷면의 잎맥과 씨방에 털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봄에 꽃을 피우는 동백에 비해 주로 겨울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무튼 동백류는 추위에 약하므로 한 그루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키우고, 다른 한 그루는 산가 마당에서 추위에 적응시키며 키워볼까 한다. 그렇지만 봄이 오면 일단은 두 그루 다 일조량이 많은 노지 마당에 심어 튼튼해지게 한 뒤 늦가을쯤에 화분에다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애기동백 묘목. 왼쪽 그루엔 꼭대기에 꽃망울이 하나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동백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하게 되었다. 동백은 중국과 일본에 많이 자생하고 우리나라에선 서남 해안과 제주도, 울릉도에서만 자생한다고 한다. 바닷가의 온화하고 습도가 높은 바람을 좋아하고 추위엔 약하기 때문인데, 최북단 동백나무 자생지인 대청도의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근년에는 휠씬 더 북쪽인 평안북도의 신미도에도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대청도의 동백 씨앗이 해류를 타고 거기까지 올라갔으리라 추측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륙이라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기로 이름난 이곳 대구지역에서도 동백나무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실내가 아닌 한데서 잘 살고 있는 동백나무가 있을까? 놀랍게도 대구수목원에 동백숲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 원예학자(최상태교수)가 대청도와 울릉도에서 선발하고 30년 동안 육묘한 내한성 동백 170여 그루를 기증하여 2014년도에 옮겨심었다고 한다. 올봄엔 대구수목원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지난봄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보았었던, 이웃마을(도동) 한 민가의 담 너머로 흐드러지게 붉은 꽃이 피어 있던 동백나무가 생각나서 어제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가보았다. 아직 일러서 꽃은 피지 않았고, 작년과는 달리 동해를 입은 듯 이파리들이 여기저기 많이 말라 있었다. 기상청 관측자료를 보면 지난 12월 중순에 느닷없이 찾아왔던 한파 때 대구지역의 일별 최저기온이 ‒9℃ 이하로 떨어진 적이 3일 있었는데(‒6℃ 이하로 떨어진 일수는 11일), 아마도 그때 얼었던 것 같았다.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더라도 나무는 죽지 말아야 할 텐데.

이웃마을 도동에서 만난 동백. 잎사귀가 여기저기 말라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오랜만에 산가에 가는 길에 마을 뒤편의 묘터 앞에 서 있던 동백나무를 떠올리고는 안부가 걱정되어 차를 세우고 그리로 가 보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化)인가? 해발고도가 450m쯤이나 되는 그곳에 키가 3m가 넘는 동백나무가 아무런 동해도 입지 않은 채 우람하게 서 있지 않은가. 사람이 추운 곳에 오래 서 있으면 귓불이 붉어지는 것처럼, 겨울에는 모든 상록수가 그렇듯이 잎사귀들이 약간의 검붉은 색을 띠었을 뿐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통통한 꽃망울도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연구해볼 만한 나무이자 입지(立地)라고 생각되었다. 훨씬 덜 추운 도시 바닥에서도 얼어버린 동백이 이렇게 높고 추운 비탈에서 멀쩡하다니.

나는 얼마 전에 한 감나무 재배 전문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한성이 약한 감나무의 동해를 방지하려면 밤에 산에서 하강하는 냉기류가 나무 주위에 고여 있지 않고 아래로 잘 빠질 수 있는 비탈진 지형에다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냉기류가 아래쪽으로 빠지는 것을 방해하는 담장이나 두둑이 있으면 안 되며, 낮고 넓은 평지도 냉기가 오래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감나무의 입지로선 좋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찬공기는 무거워서 낮은 곳으로만 가라앉아 흐르기 때문에 비탈에서는 짚이나 신문지 등의 보온재로 나무 밑동을 지면으로부터 50cm 정도의 높이까지만 감싸주어도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수령이 20년도 넘어보이는 이 동백나무가 팔공산 중턱에서 지금까지 동해를 입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과학적인 원리에 힘입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곳은 팔공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큰 계곡으로부터 40m쯤 옆으로 비켜 있고, 2차선 자동차 도로가 가로질러 지나가는 곳으로부터는 70m쯤 아래쪽 비탈이었다.

동백나무의 내한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그 밖에도 많을 것이다. 한 실험연구에 의하면 동백의 예측 치사온도가 평균 ‒11.6℃ 정도로 나타났지만, 서서히 추위에 노출되느냐 갑작스레 추위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많은 변수가 생긴다고 한다. 예를 들면 ‒5℃에서 얼어죽는 식물도 일정기간 '저온순화' 과정을 거치면 ‒30℃의 혹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도동의 동백나무가 동해를 입은 것은 따뜻한 도시에서 갑작스런 추위를 맞았기 때문이고, 그보다 기온이 최소한 3~5℃ 정도 더 낮은 곳에 사는 팔공산 동백이 멀쩡한 것은 산자락에서 미리 저온순화 과정을 겪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팔공산 동백. 겨울에는 모든 상록수의 잎이 그렇듯이 동백 잎사귀들도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나는 나무의 건강이나 수형 유지에 지장을 주지 않을 아랫가지를 하나 잘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것으로 꺾꽂이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 꺾꽂이라면 내게도 일가견이 있다. 꺾어온 1개의 가지에서 잔가지를 잘라 여러 개의 삽수를 만들었다. 증산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한두 장씩만 남긴 잎사귀도 가위로 다시 반으로 잘라버리고, 가지의 절단면은 예리한 칼로 비스듬히 다듬어서 물에 잠시 담갔다가 피트모스‒펄라이트 상토에다 꽂았다. 절반의 삽목엔 시험삼아 절단면에 생마늘즙을 발라서 꽂았다. 절단면에 마늘즙을 바르면 발근이 잘 된다는 것을 최근 유튜브에서 보았던 것이다. 지금은 한겨울이지만, 물을 충분히 줘서 발코니의 반그늘에다 두면 나무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서둘러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봄이 기다려진다. 저 삽목들이 뿌리를 어서 내리고 자라서 앞으로 팔공산 비탈에도 동백나무 군락지가 생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먼 섬과 바닷가에만 산다는 동박새도 여기서 볼 날이 오게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에 화분에 꺾꽂이한 것(윗쪽 사진)은 모두 실패했고, 장마철에 돌담 앞 마당에 꺾꽂이한 것(아랫쪽 사진: 2023. 10. 6. 촬영)은 모두 뿌리가 내린 것 같다. 후내년쯤에 충분히 뿌리가 내리면 옮겨심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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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53년 만의 최강한파

정광진 기자 입력 2023.01.25 10:02 수정 2023.01.25 10:19

영하 14.2도…1970년 1월 이후 가장 낮아
영하 16.8도 상주, 기상관측사상 최저

올겨울 최강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대구지역은 53년 만에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5일 아침 최저기온은 대구 -14.2, 포항 -13.9, 구미 -14.1, 안동 -18.1, 상주 -16.8, 의성 -19.2도 등을 기록했다.
특히 대구지역은 1970년 1월 5일 영하 15.1도 이후 53년 만에 최저기록을 세웠다. 1907년 1월31일 기상관측 이후 대구지역 역대 최저기온은 1923년 1월19일 영하 20.2도이다.
또 영하 16.8도의 상주도 기상관측 사상(2002년 1월1일)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역대 최저는 2021년 1월8일 영하 16.3도이다.
현재 경북 군위 칠곡 김천 상주 문경 예천 안동 영주 의성 청송 영양ᆞ봉화평지 북동산지에는 한파경보가, 대구와 경북 구미 영천 경산 청도 고령 성주 영덕 울진평지 포항 경주에 한파주의보가 발령 중이다. 울릉도ᆞ독도에 내린 한파주의보는 11시부로 해제된다.
울릉도와 독도에 내려졌던 '대설경보'는 이날 오전 4시를 기해 '주의보'로 변경돼 오전 11시 이후에도 계속된다. 오전 10시 현재 적설량 75.6㎝로, 오후 늦게까지 1~5㎝의 눈이 더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구기상청은 "평년보다 5~10도 가량 낮은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기온보다 5~10도가량 더 낮다”며 “오후부터 차차 기온이 올라 26일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분포를 보이겠다"고 예보했다.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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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 내용과 같이 어제 대구지역 최저기온 ‒14.2℃는 53년 만의 최저기온이었다고 한다. 오늘 26일 아침에도 추위는 이어져 대구지역 최저기온이 ‒12.3℃를 기록했다. 그래서 오늘 낮에 나는 또 산가에 가면서 팔공산 동백나무에게 가 보았다. 다행히도 6일 전의 모습과 다름없이 건강해 보였다. 앞으로 더 관찰해 봐야 하겠지만, 53년 만의 강추위에도 무사하다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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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만의 기록적인 한파를 이겨내고 팔공산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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