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식

공산(空山) 2022. 9. 9. 18:34

   삵

   우대식

 

 

   내가 한 마리 삵이 되어

   발해만 앞바다를 서성이는 이유는

   어디 먼 해조음이 들려오는 탓이다

   울지 말고 그만 잠들라는

   그 어떤 먼 신호도

   울음 소리였다는 것을 아는 때문이다

   달 아래

   그대 젖가슴으로 찬 손을 천천히 뻗어본다

   죽음이란 이런 순간 다가오는 것

   내가 한 마리 삵이 되어

   발해만 앞바다를 서성이는 이유는

   발이 네 개인 때문이다

   해변을 달린다

   달림, 들림 혹은 울음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

   12월의 해변을 내달려

   나의 울음도, 너의 울음도

   그대 핏줄 어딘가에 돋아난

   푸른 감각이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그대에게 보낸 한 통의 죽간(竹簡)은 받아보았는가

   내 입에는 날이 선 이빨이 가득 고여

   입을 벌리면 한 마리 삵이 되어

   눈 내린 험한 산을 떠돈다고 썼다

   기차는 발해만을 떠나 극락강을 지나는 중이다

   광포한 노래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고 썼다

   너는 읽었는가

   모든 근육이 일제히 발이 되어 걸어가는

   한 마리 삵,

   꽃무늬 발자국이 그대 젖은 분화구를

   어지럽게 흩뜨려 놓았을 것이다

 

 

   ―『단검』실천문학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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