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운문사 - 김상환

공산(空山) 2022. 9. 7. 11:14

   운문사

   김상환(1957~ )

 

 

   배롱나무 근처

   그늘에서의 일이다

   한여름 오후

   하나인 듯 여럿인 듯 매미 울음이

   지축을 뒤흔드는 절집 마당

   참새는 내려앉다 말고 허공 속으로

   이내 사라진다

   법고가 울리니

   개울물이 저리 맑다

   어깨 너머 나무의 푸른 하늘이

   예전 그대로다

   꽃담에 기대어선 나는 비非,

   아니 나비가 되어버린

   나반존자의 하늘

   구름은 멀고

   체에 거른 바람이 건듯 분다

   운문을 나서니 운문이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은

   사이라는 현이다

 

운문사에 갔던 시인 산문을 돌아 나서며 한 깨달음을 담고 온 듯. 그렇지. 문 하나를 통과하면 그는 필시 다른 세계로 들어서야 하는 것. 그걸 깨우치는 산사 어디에나 배롱나무 있다. 한여름 땡볕 속에 배롱나무 꽃잎 짙붉다. 배롱나무 은은한 그늘 드리워 근처에 매미는 죽비 내리치듯 대차게 울고 있다. 그 소리 속에 내려앉으려던 참새 허공으로 사라진다. 시각적 풍경을 접고 청각의 법고가 운다. 개울물이 맑다. 법고 소리 안고 개울물 흘러 닦아놓은 하늘이 푸르다. 물소리에 씻기면 이 세상 찌든 모든 것 하늘처럼 푸르다. 하여 시인도 ‘홀로 깨친 이’ 나반존자가 되어. 시심 가득해 "운문을 나서니 운문이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이다.

1981년 스물다섯 조숙한 나이에 시 「영혼의 닻」으로 신인상 당선해 나를 놀라게 한 친구. 20대 말부터 교직에 몸담고 살다가. 정년을 마치고, 첫 시집 낸지 30년 훨씬 넘어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인 그. 그러니 요즘은 무엇을 봐도 시와 연관되겠지. 그러니 운문사에 갔다가 "운문을 나서니 운문이 시가, 노래가" 된다고 했겠지. 반갑다 친구야! 이제 너무 게으르지는 말고 20대 초심으로 돌아가 저 심천 미루나무 숲에 짐승처럼 쭈그려 앉아 어둠 속에 듣던 그리스도를 향한 타는 뱃고동 소리를 다시 들어봐. 시를 쓰는데 정년은 없으니 이제 안개를 헤치며 출항하는 새벽 뱃고동소리를 나에게 다시 들려주었으면 하네.

김완하(시인·한남대 교수)


출처 : 충청투데이(https://www.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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