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이종들과의 만남

공산(空山) 2022. 6. 26. 21:45

내게는 이모가 네 분 있었다. 엄마 위로 한 분, 엄마 아래로 세 분.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살던 셋째 이모와 가장 가까이 지냈었다. 셋째 이모 슬하엔 1남2녀의 이종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릴 적부터 방학을 하면 우리집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산골이다 보니 여름엔 모기나 풀벌레에게 물려 가려우니까 긁어서 팔다리에 부스럼이 끊일 날 없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가 가까운 그 이모집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그야말로 초가삼간을 슬레이트와 시멘트 블록으로 개조한,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웃풍이 세어서 추운 집이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두 이종 여동생과 함께 큰 방에서 주무시고, 나와 이종 남동생은 작은 방에서 함께 자며 지냈다. 천장 속에선 밤마다 쥐들이 우르르 뛰어다니고, 툇마루 아래의 아궁이에선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부계보다는 모계쪽과 더 친밀히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오늘 낮에는 그 동생들 부부들과 오랜만에 청도에서 만났다. 막내 여동생 부부의 별장에서였는데, 첫째와 둘째 동생의 아들이 각자 장차 결혼할 며느리감을 데리고 온다고 해서 상견례를 겸한 모임이었다. 상견례라지만 그저 화기애애하고 격식이 없는 분위기였다. 첫째 동생의 며느리감은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고 둘째 여동생의 며느리감은 활달한 편이었지만, 두 쌍 모두 신세대들답게 부모나 미래의 시부모 앞에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다지 넓지는 않아도 잔디로 덮인 마당에 근사하게 마련한 테이블 위에서 동생들이 준비해온 양고기와 장어를 구워 먹었다. 첫째 동생이 회갑을 맞아서 케잌에 촛불을 밝히고 축가를 부르는 가운데 손뼉도 쳤다. 연장자인 우리 부부는 준비한 것도 없이 참석하여 미안했다. 그 미안함을 대신하여 적은 돈을 넣은 봉투를 내 놓았을 뿐이다. 

 

날씨가 낮에는 더웠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원해졌다. 아침부터 손님 맞을 준비에 바빴을 이 별장 주인장 배서방 부부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도 줄곧 쉴 틈이 없었다. 고기를 굽고, 배식을 하고, 마당에다 모닥불을 피우고... 저녁에는 모닥불 위에다 생쑥 더미를 얹어 옛날식 모기향을 피웠는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밤늦게 아내와 함께 돌아오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이종 여동생과 매제 하나와 나는 그동안 크게 아팠었고 또 이종 남동생은 오래 전에 손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이제 좀 허리를 펴고 살아볼 나이들인데 그렇게 병을 얻거나 다쳤던 것이다. 모두 치료를 순조로이 끝낸 것은 다행이지만, 부디 그동안의 고생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는 모두 별 탈 없이 오래오래 지금까지처럼 정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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