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물거미 - 정한아

공산(空山) 2022. 7. 8. 21:10

   물거미

   정한아

 

 

   차양 밖에는 비가 내린다

   그들 모두 聖가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조금씩 들이켜는 포도주가 그들 자신의 피로 빚어진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발효와 부패는 얼마나 다른가

 

   그는 여덟 개의 눈과 다리로

   많은 라벨들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성분과 맛과 향을 음미했으며

   그 결과 취기와 피로의 반복 속에 있었다

   (그것은 천국과 연옥 중

   어느 쪽에 더 어울립니까?) 그러나

   우연한 먹이처럼 눈앞에 자유가 다가온다면

   기꺼이 포획할 작정이다

 

   二星 호텔로 가는 좁고 젖은 포도 위에

   요란하게 울리는 여행 가방의 바퀴 소리

   골목마다 샘이 있고 광장마다 분수가 있는

   음습한 마을에는

   어리석은 여행자를 노리는 좀도둑이 끓고

   그는 당분간 용의주도하게 은거하는 중

 

   그는 가는 곳마다 집을 짓지만

   어느 곳에서나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대개

   하루살이나 젖은 낙엽

 

   자유의 기미를 포획하는 데 집중하느라

   그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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