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통영 - 도종환

공산(空山) 2022. 4. 25. 19:22

   통영

   도종환

 

 

   당포 앞바다는 나전칠기 빛이었다 돌벅수 둘이 저물면서도 전복 껍데기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장승이지만 입술 오목하게 오므리고 웃는 눈자위가 순해서 좋았다.
 
   섬 사이로 또 섬이 있었다 굳이 외롭다고 말하는 섬은 없었다 금이 가지 않은 바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상처를 특별히 내세우는 벼랑은 없었다 전란도 있고 함정도 있고 곡절 많은 날들도 있었지만 그게 세월이었다.
 
   윤이상도 이중섭도 그걸 보고 갔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았을 저녁바다를 나도 망연히 바라본다 통영에는 갯벌이 없다 바위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많이 움직여야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건 어류들만이 아니었다.
 
   통영에 다녀온 뒤로는 해수욕장이 있는 늘씬한 해안보다 고깃배가 달각달각 모여 있는 바닷가 마을이 좋았다 밀려오는 바다 밀려가는 세월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누워있는 섬들이 나는 좋았다.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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