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금몽암 - 조용미

공산(空山) 2022. 4. 16. 19:07

   금몽암

   조용미

 

   

   이곳의 들숨과 날숨, 이곳의 밀물과 썰물, 이곳의 마음과 마음, 이곳의 한기와 온기 사이

 

   또 어디에 내가 자주 머물렀더라

 

   어떤 때 네가 어느 쪽으로 약간 더 기울어지는지 알아차리는 첨예하고도 심심한 그 일이 좋았다

 

   금몽암에 들어

   파초 잎에

   시를 쓴다

 

   잠을 잘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면 이 별은 전생이 분명하니 그만 건너뛰기로 한다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욕망과 아름다움이 잠복해 있다 우리를 다치게 한다

 

   금몽암에 들러

   알록달록한 달리아를

   꺾어

 

   다음 생을 준비한다

 

   다친 자국마다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처럼 하얗게 꽃이 파고들었다 달리아는 혼처럼 나를 대한다

 

 

   ―『청색종이』2022 봄호.

   

   ■ "봉화나물밥" 옆 찻집에서 김상환 시인이 정끝별 시인의『시론(문학동네)』중 보르헤스의「알레프(Aleph)」와 이 시를 소개하고, 이자규 시인이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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