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달팽이

공산(空山) 2015. 11. 15. 12:33

   달팽이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추겼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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