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뵈르스마르트 스체게드

공산(空山) 2015. 11. 15. 13:12

   뵈르스마르트 스체게드
   김사인


   다음 생은 노르웨이쯤에서 살겠네.
   바다를 낀 베르겐의 한산한 길
   인색한 볕을 쬐며 나, 당년 마흔일고여덟 배불뚝이 요한센이고 싶네.

   일찍 벗어진 머리에 큰 키를 하고
   청어와 치즈 덩어리를 한 손에 들고
   좀 춥군, 어시장 냉동탑 그림자 더욱 길어질 때
   늘어나 덜걱거리는 헌 구두를 끌며 걸으리.
   브뤼겐 지나 어시장 옆 좌판에서
   딸기와 버찌도 좀 사겠네
   싱겁게 몇낱씩 눈이 날리는 저녁.

   성당 지나 시장 골목 입구도 좋고
   오래된 다리 부근도 좋고
   새벽 두시
   숙소를 못 찾은 부랑자가 윗도리를 귀 끝까지 올리는 시간
   다리 옆 둔덕을 타고 비틀비틀 강가로 내려가는 그 사내이겠네.
   미끄러질 듯하지만 절대 넘어지지 않지.
   적막 속의 새로 두시
   물결만 강둑에 꿀럭거려
   취해 흔들거리며 오줌을 누는
   나 요한센(아니면 귈라 유하츠도 괜찮은 이름)
   오줌을 누며 잠시 막막한 느낌에 잠기리.
   북쪽 산골의 늙은 부모와 엇나가기만 하는 작은아이 생각
   진저리 치고 머리를 긁으며
   다시 둑 위로 올라서네.
   자, 어디로 갈까.

   뜨개질은 건성인 채 밖을 자주 내다보는,
   눈발 속 키 큰 그림자를 보고
   달려나오는 여자가 하나쯤 있어도 좋아.
   '요한나!'
   전쟁에서 살아온 제대군인처럼
   내가 팔을 벌리겠지 술 냄새를 풍기며.
   눈 덮인 내 등을 털며 맞아들이는
   집이 하나

   저쪽
   노르웨이나 핀란드
   아니면 그린란드쯤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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