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에 얹는 이야기
임재정
1.
개암이 먹고 싶다던 먼뎃사람이 생각나서 약탕기 속인 듯 갈볕이 끓어서
기껏 개암인데 싶어서 산길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내게는 연緣 아니 닿는 개암
밤나무 아래 흩어진 되 남짓 알밤과
탐스레 무른 다래 알만 주워 돌아왔다
2.
가을은 어느 먼 데가 얼비치는 증세
먼 데 어디 거긴
낭떠러지, 바위산 그대
그저 나는 알밤이나 한 되 삶고
심중에 이빨달린 싹이 무성하기를 바랄 뿐
3.
나는 아무데도 아니 가고
아무 것도 아니 탐하려네
구역질하듯 곡진히 다 따른 약탕기이므로
내처 당신이나 다리려네
아흐레아, 그렇거니 당신은 꺼칠머리 억샛잎 먼데사람
가을 모기가 물어도 그냥 웃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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