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김미령 시 「작동」 평설 - 양경언

공산(空山) 2021. 5. 16. 07:54

   세상의 모든 미세한 움직임들

   양경언

   [한겨레] 2021. 04.16

 

 

   시에 ‘모든’, ‘모두’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면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읽을 필요가 있다. 이런 표현은 시인이 세상 전부를 파악할 줄 안다는 자신감에서 꺼내든 것이라기보다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곧바로 떠올리지 못할 이들까지도 헤아려야만 가능한 저 말의 한정 없는 포괄성을 시인이 감당해보겠노라 할 때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미령의 시 ‘작동’에 나오는 “세상의 모든 미세한 움직임들”이라는 마지막 구절 역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냥 움직임’도 아니고, “세상의 모든 미세한” “움직임들”이라는 표현과 마주한 순간,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규모 바깥으로까지 확장을 해도 차마 다 헤아리지 못할 ‘미세’하고도 ‘광활’한 ‘움직임들’을 거느리는 “모든”이란 말의 힘을 상대해야 한다.

 

   거대한 기계가 멈추자 파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떨림을 위해 미래의 새들이 추락한다.

   피기도 전 꽃 속에 도착한 벌들이 발을 가지런히 모아 불탄 들판의 꿈을 꾸고

   부메랑을 향해 달려가던 개의 앞발은 뒤를 향해 있다.

 

   전원 버튼은 어디에도 없고 안전장치도 망가졌지만

   모든 것은 하나씩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시간에 맞춰 먼바다의 해일이 육지를 향해 다가오고

   쓰러지기 전 낡은 백화점이 최대의 인파를 불러 모으고

   벤치에 앉은 노인이 자신의 부고를 읽는 아침

 

   무너진 굴을 수선하느라 분주한 개미들과

   불을 끄기 위해 바삐 물을 실어 나르는 벌새들과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몸짓들로 조용한 비약을 완성하는 사람

 

   막연한 징후로부터 흐린 창문을 닦아 주고

   저녁엔 자신의 맥박을 들으며 스러진 재들을 돌아보는 일

 

   지금 앉은 의자의 뒤쪽

   먼지의 서식지가 눈감고 감지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미세한 움직임들

 

   -- 김미령, 「작동」 전문 (시집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 (2021.02)

 

 

   시는 시작되자마자 작동되어야 할 것이 멈췄거나, 순서가 엉켰거나, 역방향을 향해 있느라 엉망이 되어버린 상황들을 제시한다. 이를 두고 “안전장치”가 “망가졌”다고 탓을 할 때, 시는 “모든 것은 하나씩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운명에 복종할 것을 요청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 시의 초점은 사실 “시간에 맞춰” 일어나리라고 여기는 일들도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계기와 촘촘한 조짐으로 벌어진다고 말하는 데 맞춰져 있다. “먼 바다”, “백화점”, “부고”라는 말로 연상되는, 여전히 해결 못한 ‘사회적 참사들’도 마찬가지로 미세한 부정의가 켜켜이 쌓여 빚어졌다고.

   그러니 “세상의 모든 미세한 움직임”이 가진 힘의 방향을 제대로 살필 일이다. 시는 세상을 바꾸는 “조용한 비약”은 “무너진 굴을 수선하느라 분주한 개미들”, “불을 끄기 위해 바삐 물을 실어 나르는 벌새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몸짓들”에 의해 일으켜진다고 말한다. “모든” “움직임들”의 의미를 다시 쓰는 일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망가졌다고 여겨지는 상황도 “모든 미세한 움직임”이 내포한 광범위한 무게를 조심히 다룰 때 다르게 작동시킬 수 있다. “모든”이라 말했으니, 시를 읽는 우리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양경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