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공기 예찬 - 장옥관

공산(空山) 2021. 1. 29. 12:56

   공기 예찬

   장옥관

 

 

   시인은 공기 도둑이라는 말도 있지만*

   공기 한 줌을 거저 얻어서

   온종일 넌출넌출 즐거움이 넝쿨로 뻗어간다

   물이나 햇빛, 공기 따위를

   런닝구 사 입듯 사고팔 수는 없겠지만

   눈썹 펴고 건네는 인사조차 이웃 간에 거저 얻기 힘든 터에

   허구한 날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던

   동네 카센터

   이야기 나누던 손님 기다리게 해놓고, 모터 돌리고 호스 연결해 낡은 자전거 앞타이어에 탱탱하게 바람 넣어주고, 시키지 않은 뒷바퀴까지 빵빵하게 공기 채워주는데

   삯이 얼마냐 물었더니 옥수수 잇바디 씨익, 그냥 가시란다

   햐, 공짜!

   공으로 얻은 공기 채운 마음

   공처럼 둥글어져서

   푸들푸들 가로수가 강아지처럼 마냥 까부는데

   페달 밟으니 바퀴 버팅기고 있던 살대가 모조리 지워지고 동그라미 두 개만 떠오른다

   비눗방울처럼 안팎이 두루 한겹 공기로 채워진

   무게 없는 것들

   발목 잡는 삶의 수고와 중력 벗어나 구름과 나와 자전거는 이미 한 형제가 되었으니

   텅텅 속 비운 지구가

   공기 품은 민들레 씨앗처럼 한껏

   위로 위로

   공중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 러시아 시인 만젤슈탐(O. Mandel'shtam)의 시구.

 

   --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2006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계령 - 이홍섭  (0) 2021.02.15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0) 2021.01.29
하얀 성(城) - 강신애  (0) 2021.01.29
다시 가을이 옵니다 - 조명선  (0) 2021.01.21
숟가락 통사 외 1편 - 이진엽  (0) 202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