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는다면, 천사의 반열에서
누가 그것에 답할 것인가? 천사 하나
갑자기 가슴에 나를 당겨 안는다면,
그 강한 존재로 하여 나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겨우 견디어내는
두려움의 시작일 뿐. 경이로운 것은 우리를
우습게 보아 부숴버리지 않는 것이리.
천사는 모두 두려운 존재,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삼가고 어두워가는
흐느낌의 유혹을 참고 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쓸 것인가?
천사도 안 돼, 사람도 안 돼. 의미있는 세계에
우리가 편하게 거주하지 않음을
영리한 동물은 눈치로 안다. 어쩌면
남는 것은 날마다 보게 되는 비탈에 선
어떤 나무, 어제의 길거리,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습관의 비틀린 충심(忠心).
아, 밤이여, 세계 공간으로 가득한
바람이 우리의 볼을 후비고, 밤은
머물지 않아--고대하던, 부드러이
실망케 하는 밤은, 고독한 가슴 앞에
지쳐 서 있다. 연인들에게는 밤은
더 가벼울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의지하여 그들의 운명을
감추는 것일 뿐. 그대는 아직 모르는가?
그대의 팔에서 빼어내어, 공간들로
우리가 숨 쉬는 허공(虛空)을 던지라.
새들은 아마 보다 넓어진 공기를 느끼고
보다 다정히 비상하리니.
(...)
--「두이노의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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