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어느 4월에

공산(空山) 2020. 12. 26. 10:51

   어느 4월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숲에는 다시 향기가 부유한다.

   높이 나르는 종달새들이 어깨 위로

   무겁게 우리를 내리누르던 하늘을 들어올린다.

   가지들 사이로 낮을 보기는 했지, 그 공허함을.

   그러나 오래 오래 나리는 비의 오후 끝에

   이윽고 금빛 햇빛 내리쬐는

   새로운 시간이 온다.

   그에 이어 먼 곳의 집들의 전면의

   상처 받은 창문들이

   조심스럽게 날개를 친다.

 

   그리고는 정적(靜寂), 가늘어진 비가 내린다.

   고요히. 조금씩 어두워지며 빛나는 돌 위로.

   시끄러웠던 소리들이 잦아든다.

   나뭇가지 위의 반짝이는 싹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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