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종 - 이규리

공산(空山) 2020. 12. 18. 16:19

   종 

   이규리

 

 

   그 슬픔은 팔다리가 없을 테니

   온몸으로 말을 했을 것이다

 

   머리를 깨뜨려도 당시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삼나무길 지날 때 종소리 들렸다

   종소리에는 왜 죄의 냄새가 묻어 있을까

 

   몸을 움츠리고

 

   나는 누구를 버린 사람이 되어

   숨는 마음이 되어

 

   누추한 마음도 가려주어야 하므로 저녁 여섯 시는 필요하였다

 

   팔을 길게 벌린 나무들이 사람처럼 무서워

   잰걸음을 할 때

 

   저녁 새가 소매를 물었다

 

   아무리 해도 다치게 한 것

   어두웠던 것

 

   아직 더 가야 한다면 나를 나 없는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남은 소리가 종을 다 떠나면 남은 소리를 떨어보내고 나면

   이제 울음도 아껴 사용해야 한다고

   다가오는 날들이 말을 한다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