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꽃의 좌표 - 한영수

공산(空山) 2020. 10. 25. 15:46

   꽃의 좌표

   한영수

 

 

   어쩌다가 한 번 붉은 게 아니다

   피기 시작하고 있지만

   누구의 혀도 물들이지 않았지만

 

   피가 소란해진다

   어떤 봄에도 닿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여전한 이곳에 서서

 

   어쩌다가 붉은 빛을 훔친 것이 아니다

   바람마다 붉은 그림자 지는 것이 아니다

 

   말을 여는 것처럼

   말을 깨문다

   망각을 흔들어 깨우는

   불안처럼 불안에 연루된

   부정처럼

 

   붉은 것을 끄집어내야 했고

   조금 더 밀어내는

   동백, 꽃 바깥에

   놓인 꽃

 

   극소량의 태양 속이다

 

 

  『꽃의 좌표 현대시학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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